대한민국과 맞장 소송!? ‘대략 난감’
경매 물건을 찬찬이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주택이 있다. 임차인이 전세권을 설정해서 ‘임차인’과 ‘전세권자’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것이다.
이런 물건은 낙찰자가 보증금을 인수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경쟁률도 낮고 경매기간도 길어질 뿐만 아니라 낙찰가율도 낮다. 경매사건 이해관계자인 채무자, 채권자, 입찰자가 모두 싫어할 만한 물건이다.
선순위임차인이면서 전세권을 가지고 있는 임차인이 있는 주택은 왠만하면 피하는게 정답이지만 실제로는 권리분석에 자신있는 일부 사람들이 낙찰에 나서고 있다. 낙찰가율이 대부분 낮기 때문에 분석만 잘하면 싸게 얻을 수 있는 부동산도 상당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의 권리분석 핵심은 임차인 보증금을 인수하느냐 마느냐일 것인데 이는 배당을 요구한 이해관계자의 배당요구 지위 파악을 통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오늘 소개할 판례도 이와 관계된 내용이다. 실제 선순위임차인이면서 전세권자였던 사람과 해당 부동산을 낙찰받은 사람, 그리고 국가가 소송에 휘말린 사건이니만큼 틈날 때 읽어두면 도움이 될 전망이다.
A씨는 2006년 6월 27일 주식회사 B사(이하 ‘B사라고 한다)로부터 이 사건 부동산인 오피스텔을 보증금 8000만원, 기간 2006년 7월 4일부터 2007년 7월 3일까지로 정해 임차한 후 2006년 7월 4일 이 사건 부동산에 입주하면서 확정일자를 받고 2006년 7월 7월 전입신고를 마쳤다.
그런데 A씨는 이 사건 부동산의 지번인 ‘735-11’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745-11’로 전입신고를 했다가 2006년 11월 3일 정정신고를 했다. A씨는 임대차계약 체결일인 2006년 6월 27일 B사과 사이에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전세권설정계약도 체결하고 2006년 7월 4일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전세금 8000만 원, 존속기간 2007년 7월 3일까지로 된 이 사건 전세권설정등기를 마쳤다.
A씨가 이렇게 전세권설정등기를 마칠 당시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선순위 저당권·가압류·압류등기가 없었으나 2006년 9월 5일 채권자를 신용보증기금, 채무자를 B사로 하는 채권최고액 2억 1000만 원 짜리 근저당권설정등기가 마쳐졌다.
A씨가 입주한 뒤 10개월 가량 지난 2007년 5월 21일,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해 강제경매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배당요구종기일 이전인 2007년 7월 20일, 임대차계약서와 주민등록표등본을 첨부해 임차인으로서 <임차부분 : 전부(방1칸), 임차보증금 : 팔천만 원, 점유기간 : 2006년 7월 4일부터 2007년 7월 4일까지, 전입일자 : 2006년 7월 4일, 확정일자 : 2006년 7월 4일, 임차권·전세권 등기 : 유(2006년 7월 4일), 입주한 날(주택인도일) : 2006년 7월 4일>로 기재한 '권리신고 및 배당요구신청서(주택임대차)'를 제출했다.
집행법원은 2007년 8월 1일 매각물건명세서를 작성하면서 ‘최선순위설정’란에 “2006년 7월 4일(전세권)”, ‘점유자’란에 A씨를 각 기재하고, A씨가 임차인으로서 권리신고한 내용(단, 전입신고일자는 2006년 7월 7월로 기재) 및 2007년 7월 20일 배당요구한 사실을 기재했다.
이어 등기부등본에 근거해 A씨가 전세권자로서 보증금 8000만 원이라는 내용을 기재하고 그 ‘배당요구 여부(배당요구일자)’란에는 아무런 기재를 하지 않았다. 또 ‘등기된 부동산에 관한 권리 또는 가처분으로 매각허가에 의하여 그 효력이 소멸하지 아니하는 것’란에도 아무런 기재를 하지 않았다.
한편 경매에 참여해 이 오피스텔을 낙찰받은 것은 C씨. C씨는 1억1260만원에 물건을 낙찰받고 대급을 완납, 2007년 10월 24일자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A씨가 설정했던 전세권은 같은 날 매각을 원인으로 말소됐다.
보증금을 날린 셈이 된 A씨는 C씨를 상대로 말소된 전세권의 회복등기절차의 승낙을 구하는 소송을 걸어 이겼고 C씨는 재판결과에 따라 A씨의 전세보증금 8000만원을 지급해야 했다.
이 재판을 맡은 중앙지법은 "A씨의 배당요구는 임차인 자격에 의한 것이고, 전세권자로서의 배당요구로는 볼 수 없어 이 사건 전세권은 경매로 인해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C씨는 재판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집행법원의 경매담당 공무원이 그 매각물건명세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등기된 부동산에 관한 권리 또는 가처분으로 매각허가에 의해 그 효력이 소멸하지 아니하는 것’란에 이 사건 전세권이 인수된다는 취지의 기재를 했어야 할 것임에도 이를 기재하지 아니한 채 경매를 진행하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원심을 맡은 서울고법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가 C씨 손해액의 20%를 책임져야 한다는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전세권자로서의 지위 및 대항력 있는 임차인으로서의 지위를 겸유하는 자가 임차인으로서 배당요구를 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세권자로서 배당요구를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국가가 매각물건명세서에 매각대상 부동산의 권리관계에 관한 사항을 다르게 작성함으로써 매수인의 매수신고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쳐 매수인으로 하여금 불측의 손해를 입게 한 이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관련 법령을 살펴보고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등기부등본 등을 검토했다면 전세권이 소멸하지 않을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으나 이를 소홀히 했고 누가 우선하여 배당을 받을 것인지 여부를 제대로 살펴보지 아니한 잘못이 있으며, 이와 같은 잘못과 이 사건 매각물건명세서의 전체적인 내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때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손해액의 20%인 1600만원으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결론지었다.
C씨로서는 여전히 6000만원 상당의 손해가 남게 된 상황. 결국 대법원에 상고하며 재판을 이어갔지만 대법원 역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만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는 사실심의 전권에 속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판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세권자의 지위를 겸한 임차인, 임차인의 지위를 겸한 전세권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임차인 자격으로 배당요구를 했다고 해도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한 전세권자의 지위가 자동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경매인들이 헷갈릴 수 있다. 이번 경우처럼 선순위임차인이면서 선순위전세권자인 경우에는 그나마 권리분석이 어렵지 않지만 임차인이 전세권만 설정해두고 전입신고를 안했다거나 확정일자를 받아두지 않았을 경우 등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접했을 때는 먼저 매각물건명세서를 통해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했는지 여부와 배당요구를 했다면 어떤 자격으로 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자격으로 배당요구를 하는게 적법한지, 만약 적법하지 않다면 임차인이 가진 다른 지위가 배당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복잡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런 고민 없이, 무조건 입찰에 나선다면 이번 판례의 내용처럼 보증금을 물어주고 국가와 싸워야 하는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부동산태인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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