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현장 l '소 담보 대출' 축사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통과"


감정평가사 6개월마다 현장 찾아


개체수·건강상태 체크하며 관리


농협 "동산 특성상 유연하게…"


야반도주 우려해 평판 고려 대출


"저리 장점…담보인정률 아쉬워"

5살 '이쁜이'는 260만원이 나왔고, 3살 '이쁜이 딸'은 230만원이 나왔다. 둘을 포함해 총 136마리에 대한 감정평가액은 2억8887만원이었다. 이 중 40%가 담보로 인정돼 1년간 3.86%의 금리로 1억원을 빌렸다. 지난해 6월 움직이는 물건에 등기할 수 있게 한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새로 시행된 뒤 엔에이치(NH)농협은행에서 소를 담보로 대출받은 충남 보령시 이정학(52) 대표의 사연이다.

소는 동산이기 때문에 은행 쪽에선 6개월에 한 번씩 담보물이 그 자리에 잘 살아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5일 농협 여신감정팀 윤석민 차장(감정평가사)이 '담보물 관리 체크리스트'를 들고 소 축사를 찾았다. "하나, 둘, 셋, 넷…." 윤 평가사는 먼저 마릿수를 세기 시작했다. 136마리가 법원에 '집합 등기'로 등록돼 있는데, 80% 이상으로 그 수가 유지돼야 담보물로 인정된다. '씨소'와 같이 수억원을 호가하는 소들은 '개별 등기'를 하지만, 평범한 소들은 집합 등기를 한다. 750평(2479㎡) 축사가 28개 방으로 나눠져 있는데, 방마다 4~5마리씩 앉아 있었다. 세보니 총 140마리였다. 수적 가치 평가는 '통과'다.

다음은 소 상태를 살펴야 한다. 담보로 잡을 당시 태어난 지 1달된 송아지부터 10살 된 어른 소 '짱'까지 다양했다. 한우는 개별 식별 체제로 관리되고 있어서 점검하는 게 쉽다. 식별번호와 담보액이 정리된 소 리스트를 들고 귀에 붙어 있는 12자리 식별번호와 소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송아지 출산과 도축용 출하가 수시로 반복되기 때문에 100% 같은 소들로 담보물이 유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이 농장에서도 6개월 사이 20여 마리가 다른 소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애초 소들과 비슷한 연령대여서 상태 체크 역시 통과됐다. "소가 대거 송아지로 바뀌어있다든지 큰 변화가 생겼으면 일부 상환 등 조치를 취해야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동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담보물을 관리한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소만 있다고 누구나 대출해주는 것은 아니다. 신용도와 지역 평판 등을 종합해 대출 대상을 선별한다. 어느 날 담보물을 몽땅 데리고 도망가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대지나 축사와 같은 부동산에 범위를 한정짓는 조건도 붙는다. 1년에 한 번 정도 담보물을 체크하는 부동산과 달리 6개월 이내에 한번씩 체크받아야 하는 조건도 있다.

그간 축산 농가들은 사료업체에서 동산 담보 형태의 대출을 받곤 했다고 한다. 지난해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은행들이 부동산만 담보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사료업체들은 소에 공증을 받아오면 이를 담보로 사료 값을 외상으로 해주고, 때론 대출도 해줬다. 이정학 대표는 "소에 현물 공증을 받아 8~24% 정도 이자로 돈을 빌리는 건데, 사료값이 크게 올랐을 때 업체들의 여러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가 담보권 실행으로 농장을 날린 사례도 있었다. 이제 금융회사가 하는 거니까 이자도 싸고 거래 요구에도 얽매이지 않으니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담보가 40%까지밖에 인정되지 않는 점, 가축재해보험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점 등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지난해 8월 은행들이 상품을 출시한 뒤 연말까지 나간 대출금액은 3485억원이다. 중소기업에 절삭기, 분쇄기 등 유형자산과 철강, 아연, 동판, 석재 등 재고자산 그리고 농가에 소와 쌀, 냉장·냉동의 수산·축산물에 담보가 잡혔는데 유형자산과 재고자산의 비중이 76%를 차지했다. 유형·재고자산에 대한 중간 평가는 살아있는 담보물보단 쉽다. 윤 평가사는 지난달 전남 장성군플라스틱 제품 제조 공장에 다녀왔는데, 포대에 담긴 가루 형태 재료의 총 양과 상태를 살폈다. 대출이 나갈 때는 감정평가 전 1년치 총 수량을 체크해 그 중 최저치에 80%를 담보물로 인정한다. 6개월마다 창고를 살피고 회계장부의 재료 입출고내역을 계산해 유지 여부를 따진다.

동산담보대출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농가 대출에 새 물꼬를 틀 수 있을까. 공장이나 농장을 임대해 사용하는 등 마땅한 담보물이 없는 업체들엔 당장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되지만, 활성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동산 담보 인정 비율을 현행 감정평가액의 40%에서 60%까지 높이고 동종 업종 3년 이상의 경력을 1년으로 줄여 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도 영업점 경영성과평가 때 동산담보대출 실적에 가중치나 특별가점을 부여하는 등 촉진에 나섰다. 올해 들어 돼지의 엉덩이에 6자리 농장식별번호 표시를 의무화하는 지자체들이 늘면서 하반기부터는 돼지 담보 대출을 시작하는 은행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오는 7월부터 인터넷으로 동산 등기를 조회할 수 있게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