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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승인 제도의 문제점과 입법론

LBA 효성공인 2019. 4. 8. 18:41

한정승인 제도의 문제점과 입법론

최준규 부교수 (서울대 로스쿨)



1. 한정승인 제도의 문제점


우리법상 상속에 의한 권리·의무 승계는 법정 당연승계 포괄승계가 원칙이다(민법 제1005조).

한정승인의 경우 당연승계·포괄승계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상속인은 상속채권자에 대하여 상속재산의 범위 내에서 물적 유한책임을 부담한다. 그런데 현행 한정승인 제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재산분리가 충분히 관철되지 않는다.(법 규정상 분리가 되지 않고 상속인을 대위하여처분금지 등)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의 고유채권자(상속인의 채권자)는 상속채권자(피상속인의 채권자)가 상속재산으로부터 채권의 만족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상속재산을 고유채권에 대한 책임재산으로 삼아 이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상속채권자가 상속인의 채권자보다 우선하지만(대판 2016. 5. 24. 선고 2015다250574),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은 상속재산에 대하여 상속인의 채권자를 위해 유효하게 담보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판(전) 2010. 3. 18. 선고 2007다77781}.

즉 상속인의 임의처분을 통해 상속재산에 대하여 상속인의 고유채권자가 상속채권자보다 우선할 수 있고

 ‘쌍방향의 완전한 재산분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현행법 해석론상 이는 부득이하다.

한정승인 후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인의 처분권이 제한된다는 규정도 없고,

 한정승인 사실이 부동산 등기부를 통해 공시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정승인자의 상속재산 양도는 유효인데, 상속재산에 대한 근저당권 설정은 무효라고 보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입법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결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속채권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상속채권자와 상속인의 채권자를 공평하게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한정승인은 효율과 공평의 측면에서 불완전한 청산제도이다.

우리 현실에서 한정승인에 따른 배당변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한정승인은 상속인의 책임제한을 위해 주로 활용된다.

한정승인자는 채권자에 대한 공고, 최고 등을 해야 하는데(민법 제1032조) 실제 이러한 공고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민법 제1037조는 한정승인 절차에서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금전화할 경우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하는데(이 조항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경매는 민사집행법 제274조에 따라 이루어지는 상속재산에 대한 형식적 경매이다. 대판 2013. 9. 12. 선고 2012다33709),

이러한 절차는 임의매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또한 한정승인 절차 진행 중 상속채권자가 상속재산에 개별집행을 할 수 있으므로

상속채권자들 사이의 공평한 변제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민법 제1038조(부당변제 등으로 인한 책임)에 따라 상속인이 상속채권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해서 불공평한 변제결과가 사후적으로 교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상속인 고유의 책임재산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 입장에서 민법 제1033조(최고기간 중의 변제거절)를 근거로 들어 적극적으로 상속채권자의 개별집행을 저지할 유인은 크지 않다.

근본적으로 청산업무를 상속인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한정승인자의 전문성, 공정성, 경험 등을 고려할 때 그가 적법하게 청산절차를 완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럴 유인도 부족하다.

배당변제 후 잔여 상속재산이 있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한정승인을 공시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등기부에 이를 표시할 수도 없다.

 도산절차와 달리 한정승인 절차를 염두에 둔 부인권이나 상계제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평한 청산이라는 관점에서 상속재산 파산이 한정승인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상속재산 파산제도는 잘 활용되지 않는다.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은 상속재산이 채무초과인 경우 상속재산파산 신청의무를 부담하지만(채무자회생법 제299조 2항), 실제로 이 의무의 이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입법론1 : 상속재산 파산절차와 평시 상속재산 청산절차의 구별

 상속재산파산 신청의무를 부과하는 채무자회생법 제299조 2항에 대해 한정승인 절차를 통해 상속채권자와의 관계를 처리할 수 있으므로 삭제함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구 파산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 등에게 파산신청의무를 부과하고 있었으나,

① 상속재산 파산사건의 경우 적극재산이나 소극재산의 규모가 크지 않고 권리관계도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한정승인이나 재산분리 제도를 통해 충분히 공평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 있고,

 ② 상속채권자에게도 파산신청권이 인정되는 점을 고려해 2004년 개정 파산법은 파산신청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정승인 절차에서는 쌍방향의 완전한 재산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현행 한정승인 제도는 효율과 공평의 측면에서 불완전하다.

 간이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청산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우리법은 상속재산 파산에 관해 이미 상세한 규정을 갖고 있으므로,

민법에서 간이한 절차를 규정하는 것보다 채무자회생법에 그러한 절차를 추가로 마련하는 것이 체계정합적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 등에게 파산신청의무를 부과하는 현 채무자회생법의 태도에 찬성한다.

상속재산이 채무초과인 경우 상속재산 청산은 상속재산 파산절차로 일원화되어야 하고,

 절차비용을 충당하기에도 적극재산이 부족하여 청산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파산선고와 동시에 파산절차 폐지를 함으로써 상속인이 책임제한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함이 정도(正道)이다.

 서울가정법원은 2017년 7월부터 한정승인신고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경우

 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파산 제도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하고 있고,

서울회생법원은 법원 홈페이지 및 뉴스타트 상담센터에서 상속재산파산신청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으며

이후 서울회생법원의 상속재산파산 신청 접수건수가 상당히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행법 규정에 충실한 바람직한 실무 운용이라고 사료된다.

입법론의 관점에서는 한정승인 제도와 재산분리 제도를 통합하여 제3자(청산인)가 주도하는 평시(平時) 상속재산 청산절차를 마련함이 타당하다.

상속재산이 채무초과인지를 불문하고 상속인은 상속재산의 분리청산을 원할 수 있고,

상속채권자도 상속인이 채무초과라면 상속재산의 분리청산을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신청이 이유 있어 법원이 청산명령을 발령한 후의 법률관계는 기본적으로 상속재산 파산선고 후 법률관계와 비슷하다.

 즉 상속재산과 상속인의 고유재산은 완전히 분리된다(쌍방향의 완전한 재산분리).

 평시 청산절차 진행 중 상속재산이 채무초과인 사실이 밝혀졌다면 파산절차에 따른 청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동상속의 경우 상속인 1인이 상속재산 파산신청을 할 수 있지만, 평시 상속재산 청산은 상속인 전원의 신청이 필요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입법론2 : 상속재산 파산절차의 개선

 상속재산 파산절차도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간이한 파산절차 마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채무초과 상속재산의 경우 상속포기를 거쳐 종국적으로 상속인부존재를 이유로 국가가 자기 비용으로 청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법(제1053조 내지 제1059조)은 상속적극재산으로 절차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청산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저비용·고효율의 청산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에게도 이득이다

. 현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채무초과만 상속재산 파산신청 원인인데

지급불능도 파산신청 사유로 보아야 한다.

상속재산 전체가 하나의 영업을 구성하는 경우 지급불능 상황을 충분히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인에 대한 개인회생절차 개시 후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개인회생절차 진행 중에 채무자가 취득한 재산은 개인회생재단에 포함되므로(채무자회생법 제580조 1항 2호) 상속재산은 개인회생재단에 속한다(팽창주의).

그렇다면 상속채무도 - 비록 개인회생채무자가 개인회생절차 개시 후에 취득한 것이지만 - 개인회생채무로 보는 것이 균형에 맞다. 이에 관해서도 명문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상속채권자는 평시 상속재산 청산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상속재산파산절차가 진행되어 폐지 또는 종결된 경우

상속인에게 상속채무에 대한 면책신청권을 부여하거나 상속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규정을 도입하자는 견해도 있다.

상속재산파산절차 종료 후 상속채권자의 상속인에 대한 상속채무 이행의 소를 허용할 실익이 없고,

 상속인이 상속채권자의 민사소송에 일일이 별도로 대응하고 전부이행 판결선고에 따른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 판결주문에 책임유보가 명시될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 상속채권자의 이행의 소 제기는 원칙적으로 허용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상속인은 상속포기를 하지 않은 이상 실체법상 채무자 지위에 있고,

이러한 상속인이 응소부담을 지는 것이 꼭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상속재산이 추가 발견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시효중단의 목적으로 상속채권자가 소를 제기하는 것을 막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이 경우 전부 승소한 원고에게 소송비용 부담을 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는 파산절차에서 미신고한 상속채권자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이다.

채무자회생법 제537조는 미신고 채권자도 배당완료 후 잔여재산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본 구 파산법 제289조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일반 파산절차에서 미신고채권자는 잔여재산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하여 위 조항은 삭제되었다.

 절차의 안정성을 강조하면 일본과 같은 입장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속재산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채권자가 그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은 가혹하지 않은가?

 미신고 상속채권자에게는 신고 상속채권자보다 후순위라는 불이익만 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상속재산이 상속인의 고유재산과 혼화된 뒤 비로소 나타난 미신고 상속채권자의 권리행사만 금지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최준규 부교수 (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