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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의 윤리학

LBA 효성공인 2013. 11. 2. 10:48

 

부동산리더스

박원갑의 마켓리서치

부동산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부동산 시장을 체계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투자 신호등이 되고자 합니다. 객관성, 공정성, 그리고 도덕성. 이 3가지 철학을 바탕으로 아직 어려운 영역인 진정한 부동산 애널리스트를 추구합니다

 

부동산시장의 윤리학

 

최근 미국의 국제부동산자산관리사(CPM)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면서 깜짝 놀랐다. 부동산자산관리업 예비 종사자에 대한 체계적인 윤리교육 때문이었다.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150문제를 푸는 윤리시험까지 치렀다. 미국인 강사는 다른 개념시험이나 실기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도 윤리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합격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부동산에서 윤리가 중요한 덕목이라는 얘기였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미국의 부동산업 윤리의식이 이 정도인가. 이것이 바로 부동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가. 우리나라에 수많은 부동산, 주택 관련 자격증이 있지만 윤리시험을 별도 과목으로 치르는 시험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부동산자격증인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부동산학개론에서 윤리를 약간 언급할 뿐이다. 아파트 값은 많이 오르고 부동산업 종사자도 많이 늘었지만 윤리의식은 바닥 수준이다. 한국 부동산업의 국제적 수준 성장은 서비스 윤리(의뢰인과의 관계), 공중 윤리(공중과의 관계) 등 직업윤리 수준을 확 끌어올리는 일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부동산을 거래하는 사람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존재다

 

부동산 종사자나 시장 참여자의 도덕과 윤리수준이 낮다보니 부동산 시장은 불법과 부패의 음습한 공간이 된다. 일본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존재라고 했다. 순간의 발 디딤이 교도소의 담장 안쪽과 바깥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말하자면 천당과 지옥의 운명이 너무 쉽게 갈린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그래서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 처리를 앞두고도 권력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거래 역시 합법과 불법 사이를 위태롭게 걷는 외줄타기 존재다. 부동산 거래에서는 다른 금융자산 거래와는 달리 불법과 탈법의 유혹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도 없이 불법과 탈법을 쉽게 저지른다. 가령 A씨가 10억 원짜리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가정하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약 때부터 다운계약서(실제 거래된 금액보다 낮추어 계약서 작성), 업계약서(실제 거래된 금액보다 높여 계약서 작성)를 쓴다. 지금 당장 혹은 나중에 팔 때 양도세를 덜 내기 위해서다. A씨가 허위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혹시 위장 전입, 차명(남의 이름을 빌림) 등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설사 이런 불법 행위에서 자유롭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입 자금의 출처가 문제될 수 있다. 주택은 생애에서 가장 큰 쇼핑이어서 매입할 때 대체로 부모로부터 돈을 빌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증여받았을 때에는 증여를 받은 자녀가 증여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증여세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세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애써 모른 체 한다. 이처럼 부동산 거래과정에서 허위 계약, 위장 전입, 차명 부동산 취득, 증여세 탈루, 양도세 축소신고 등 불법에서 비껴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 탈법이나 불법행위가 관계당국에 적발이 되면 법을 어긴 사람이 되고 적발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만약 적발되면 정치인처럼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강조되는 고위 공직자라도 해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암’이라며 8.31 부동산 대책을 진두지휘했던 부동산정책 실무기획단 책임자들도 농지법을 위반하며 땅 투기를 했다. 이런 저런 연유로 국민들 사이에 ’부동산은 곧 투기‘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혔다.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투기꾼 취급을 받는다. 이 같은 국민들의 왜곡된 부동산 인식은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어찌 보면 왜곡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윤리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식을 찍어주면 전문가, 부동산을 찍어주면 투기꾼

 

주식이나 펀드를 추천하는 사람들은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예컨대 펀드 역시 중국 경제가 크게 발전할 테니 중국펀드를 하루라도 빨리 가입하라고 추천하면 예지력이 뛰어난 전문가가 된다. 또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테니 삼성전자, 하이닉스 매입을 추천하면 대단한 분석력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된다. 그러나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가 초고층 재건축이 되면 큰 이익이 될 것이니 매입하라고 하면 대접 수위가 낮아진다. 집값을 부추기는 투기꾼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투기지역 아파트 매입을 권유했다고 사법당국이나 세무당국으로부터 투기혐의자로 조사받을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 대표적인 블루칩 종목이다. 그런데 한쪽을 추천하면 전문가가 되고 한쪽을 추천하면 투기꾼이 되는 세상이다. 이는 부동산시장의 정보 유통과정이 그만큼 투명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부동산시장에서는 정보를 걸러줄 수 있는 별다른 여과장치나 투자가치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백만~수천만 명이 참여하는 시장이 어느 전문가 말 한마디에 춤출 만큼 바보가 아니다. 시장의 힘을 너무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동산 전문가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고쳐지지 않는다. 과거 일부 올바르지 못한 부동산전문가들의 일탈 행위도 이런 고정관념 형성에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삼계탕보다는 보신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을 보는 눈이 다분히 이중적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밖으로 드러내놓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몰래 투자하는 대상이다. 요즘 시대를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부동산투자는 PR 대상이 되지 못한다. 광장보다는 밀실 개념이다. 보양식으로 비유하면 부동산은 삼계탕보다는 보신탕과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에서 보신탕집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변보다는 이면도로의 뒷골목에 감춰져 있다. 보신탕을 권할 때도 “보신탕을 드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탕 하십니까”라고 은어를 쓴다. 넓은 마당에서 온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이 아니라 뒷방에서 남정네들이 모여 몰래 먹는 음식이다. 자신이 공인이라면 강남 재건축을 살 때 주변에게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몰래 투자한다. 부동산 투기꾼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고시를 패스해 공직자의 길로 들어선 한 지인은 돈이 생겨도 집 이외에는 부동산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부동산 보유 그 자체가 자신의 출세에 도움보다는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회사를 일구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존경을 받지만 아파트를 투자해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인식은 집이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거처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 사유재이면서 공공재이기도 한 주택의 양면성이 결합돼 생긴 것 같다. 상당수 부자들의 부의 축적과정이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이뤄졌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한몫 하고 있다. 실제 국내의 자산규모 30억 원 이상 부자들은 주로 부동산 투자와 상속으로 재산을 모았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본다. 만약 그 금액만큼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합리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주택 10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코미디언 부인의 당당한 공개는 다소 무모한 행동으로 보인다. 오해와 편견이 그대로 투영되는 한국적 현실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겸업 부동산 전문가의 현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는 주식시장처럼 시장 분석을 직업으로 하는 애널리스트가 없다. 부동산은 주식과 함께 우리나라 자산시장을 구성하는 양대 축이다. 오히려 가계의 부동산자산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할 때 부동산부문에 더 많은 시장분석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데도 부동산시장에는 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처럼 애널리스트가 없을까. 이는 부동산업에서 부동산정보의 유통을 담당하는 부동산정보제공업, 부동산거래정보망사업 등 부동산정보서비스산업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애널리스트의 영역은 주식 유통산업에 종사하는 증권사 몫이다. 그러나 부동산정보서비스산업은 산업의 규모가 작다 보니 전담인력을 둘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장 분석만 해서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분양대행업자, 컨설팅업자, 개발업자 등이 부동산 전문가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학이 임장학문인 만큼 풍부한 현장 경험이 중요한 덕목이긴 하지만 사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산자를 순수하지 못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생산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깨끗함을 내세우며 생산자를 공격한다. 논일을 다녀온 농민에게 바지에 흙이 묻었다고 나무라는 격이다. 논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바지에 흙이 묻지 않는다. 부가가치를 왕성하게 생산하는 사람들은 남을 나무랄 시간적 여유가 없다. 비 생산자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생산자의 작은 흠집을 침소봉대해서 매도한다. 어쨋든 우리나라에서는 비 생산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정보서비스산업은 학교 앞 문방구점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요즘 문방구에서는 문구만 팔지 않는다. 문구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햄버거, 떡볶기, 체육복 등 다양한 품목을 판다. 문구만 팔아서는 가게를 꾸려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규모의 경제 문제다. 부동산 유통시장이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부동산정보서비스산업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시장 분석을 전담할 전담 인력을 둘 수 있고 시장 투명화를 위한 연구개발(R&D)투자도 가능하다.

부동산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부동산시장에서 이코노미스트(애널리스트)는 승용차의 공기필터와 같다. 불순물이나 오염된 정보를 걸러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정보의 필터는 다른 단계보다 부동산정보의 유통단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효력을 발휘한다. 부동산 상품의 제조업자(건설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자 논리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래서 건설관련기관의 연구자들은 생산자를 위한 이데올로기 만들기에 힘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애널리스트)는 어떤 특정 집단을 위해 봉사해서는 안 된다. 유일한 봉사 대상자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다. 어찌 보면 애널리스트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진정한 필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 도덕성, 윤리성, 객관성, 공정성 등 5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 전문성은 남들과 차별화된 지적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려는 이른바 사고의 균형성이다. 그러나 이런 덕목을 가진다고 해서 진정한 이코노미스트(애널리스트)가 될 수 없다. 도덕성과 윤리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단순한 지식 기술자에 불과한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자신이 수행하는 활동이 직접, 간접으로 일반 공중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락한 부동산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다듬는 노력, 즉 자기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덕목을 모두 갖출 때 부동산 이코노미스트(애널리스트)로서 시장에 지적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솔하다면 이에 그치지 않고 시장 참여자들의 영혼까지 울림을 던질 것이다. 아직 환경이 녹록하지 않지만 ‘영혼의 울림이 있는 진정한 부동산 이코노미스트’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 물론 그 과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우직한 우공이 흙을 퍼서 산을 옮기듯(우공이산, 愚公移山) 언젠가는 달성할 필생의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