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재판정 승인 또는 집행의 거절 사유에 해당하는 절차적 권리 침해의 정도
가. 사실관계
당사자들 간의 계약에는 분쟁 발생 시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규칙에 따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중재로 최종 해결한다는 분쟁해결조항이 있었다.
나. 판결요지
판정부 구성이나 중재절차의 하자를 집행거절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라호는 중재절차의 계약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중재절차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자치 및 합의로 형성되나, 당사자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보충적으로 해당 중재에 적용되는 임의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위 규정에서 정한 중재판정 승인이나 집행의 거절 사유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당사자의 합의나 임의규정을 위반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해당 중재절차에 의한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에 대한 침해의 정도가 현저하여 용인할 수 없는 경우라야 할 것이다.
다. 해설
이 판결은 승인국 혹은 집행국 법원에서 중재판정 승인·집행의 거절 사유, 특히 뉴욕협약 제5조 제1항 라호의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의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당사자가 중재절차에서 적시에 이의를 제기하였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국제중재사건에 국내중재규칙이 적용된 사안에서 중재판정취소를 명한 사례
(서울고등법원 2017. 6. 9. 선고 2017나2002449, 2002456 판결)
가. 사실관계
한국계 외국인 사업가인 원고와 국내법인 피고는 연대보증약정 등을 체결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분쟁에 대하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에 의하기로 합의하였다.
나. 판결요지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중재법’ 의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는 당사자 사이의 유효한 합의에 위반한 경우,
중재판정부가 당사자의 합의에 위반하여 구성되었다는 이의제기는 중재판정부에게 판정권한을 위탁한 근거에 관한 이의제기로서, 그 이의제기 기간에 관해서는 ‘중재법’ 제 17 조 제 2 항이 ‘중재법’ 제 5조에 우선하여 적용되어 ”본안에 관한 답변서를 제출할 때까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해설
1심판결은 국내중재규칙에 따라 구성된 중재판정부가 내린 이 사건 중재판정은 중재법 제36조 제2항 제1호 라목의 중재판정 취소사유가 있고,
3. 영국 계약법상 이행거절의 의미 및 이행거절의 의사 표시여부의 판단기준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4다233176, 233183 판결)
조선회사인 A사는 B사와 사이에 이 사건 각 선박에 관하여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A는 2010년 7월 15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 사건 각 선박에 대한 강재절단(steel cutting)을 실시하고 B에 이를 통지하였다.
나. 판결요지
영국 계약법은 이행기 전 계약위반의 법리(doctrine of anticipatory breach)를 인정하고 있다.
이행거절은 계약이 성립한 후 이행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중요한 의무를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을 표명하는 말이나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의 계약 상 의무 이행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Heyman v Darwins Ltd. 참조).
이행거절의 의사표시는 반드시 명시적으로 하거나 특정 행위나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일련의 행동을 통하여 묵시적으로 할 수도 있다.
다. 해설
이 사건은 각 선박건조계약에서 준거법으로 정해진 영국법이 실체법으로 적용되었다.
대법원은
4.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보험계약에 따른 준거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 사례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5다42599 판결 손해배상(기) [공2017하, 2167])
가. 사실관계
내국법인인 해상운송인 갑 주식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국 병 법인을 수하인으로 하는 운송계약을 을 법인과 체결한 후,
나. 판결요지
책임보험계약에서 보험자와 제3자 사이의 직접청구권에 관한 법률관계는 그 법적 성질이 법률에 의하여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제3자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한 관계에 해당한다.
국제사법 제34조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의 법률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채권의 양도가능성, 채무자 및 제3자에 대한 채권양도의 효력은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제1항), 채무인수에 대하여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제2항). 또한 국제사법 제35조는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하여, 이전의 원인이 된 구채권자와 신채권자 사이의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하지만, 만약 이러한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 공히, 이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채무인수 및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하여 이전되는 채무·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한 국제사법 제34조 및 제35조의 기준은 법률에 의한 채무의 인수의 경우에도 참작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하게 되는 원인은,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하는 것과는 별개로, 기초가 되는 보험자와 피보험자 사이의 법률관계인 책임보험계약에 관하여 제3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하는 법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3자 직접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에 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구체적인 책임의 범위와 내용은 책임보험계약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고, 책임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된다.
다. 해설
대법원은 채무인수에 관한 국제사법 제34조와 35조를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이 사건에서 보험자가 피보험자로부터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인수하게 된 법률관계는 책임보험계약이고, 그 준거법은 영국법이므로, 이 사건 제3자 직접청구권의 행사에 관한 법률관계에도 영국법이 준거법으로 적용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5. 특정이행 명령의 대상이 되는 계약상 의무가 충분히 특정되지 못하여 판결국에서도 강제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 강제집행을 허가할 수 없다고 본 사례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2다23832 판결]
가. 사건 개요
피고는 미국, 캐나다에서 보유한 특허권에 관한 배타적 사용권을 원고에게 부여하는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건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소송에서 승소한 당사자는 변호사보수를 회수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합의각서를 작성하였다.
그런데 피고 회사가 합의한 내용대로 이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 사건 합의각서와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이 무효라는 취지의 통지를 하자, 원고측은 피고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피고가 이 사건 합의각서와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에 정한 의무를 불이행하였음을 이유로 계약에 따른 특정이행(specific performance)과 변호사 보수 및 비용(attorneys’ fees and costs)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미국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합의각서 및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여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하고, “원고들은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합의각서와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의 특정이행 명령을 받을 권리가 있다.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변호사보수 및 비용 미화 94만378.32달러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하였고 그 판결은 확정되었다.
나. 판결 요지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4호에서 요구하는 상호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승인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으며, 해당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같은 종류의 판결을 승인한 사례가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다.
민사집행법 제26조 제1항에서 정하는 ‘외국법원의 확정재판 등’이라고 함은 종국판결로서 구체적 급부의 이행 등 강제적 실현에 적합한 내용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이행 명령의 형식 및 기재 방식이 우리나라 판결의 주문 형식이나 기재 방식과 상이하다 하더라도, 집행국인 우리나라 법원으로서는 민사집행법에 따라 외국법원의 확정재판 등에 의한 집행과 같거나 비슷한 정도의 법적구제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특정이행 명령의 대상이 되는 계약상 의무가 충분히 특정되지 못하여 판결국인 미국에서도 곧바로 강제적으로 실현하기가 어렵다면,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강제집행을 허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외국법원에서 특정한 의무의 이행에 대한 명령과 함께 소송에 소요된 변호사보수 및 비용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이 있는 경우, 변호사보수 및 비용의 지급을 명하는 부분에 대한 집행판결이 허용되는지는 특정한 의무의 이행에 대한 명령과는 별도로 그 부분 자체로서 민사집행법 제27조 제2항이 정한 요건을 갖추었는지를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
다. 해설
원심은 상호보증의 인정 범위를 좁게 판단하여, 특정이행 부분의 집행 가능성을 판단 시 우리나라 민사집행법에 따라 강제집행을 실현될 급부의 종류, 내용, 범위 등이 직접, 구체적으로 표시되었는지를 검토하고 집행권원으로서의 적격을 갖출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변호사 보수 부분은 집행 적격성이 없는 특정이행 부분의 판결을 얻기 위하여 지출한 비용이며, 본안의 재판에 종속하는 재판이므로 집행판결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대법원은 집행권원 적격성을 검토함에 있어 그 기준을 우리나라만이 아닌 해당 판결국에서의 강제집행도 가능한지를 고려하였다. 변호사보수 및 비용의 경우, 해당 부분은 특정이행 부분과 별도로 민사집행법 제27조 제2항의 집행 요건을 판단하여야 하며, 캘리포니아주 민법 제1717조 (a)항과 민사소송법 제1021조에서도 변호사보수와 비용 청구를 계약 또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독립된 권리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별개의 소송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6. 외국법원에 이행소송이 계속 중인 경우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서울고등법원 2017. 8. 22. 선고 2017나2009594 판결 (확정)]
가. 사실관계
피고 B는 2014년 12월 2일 소외 E 회사를 상대로 계약상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미국법원에 제기한 후, 미국법원의 허가를 얻어 E 회사의 대표자인 C와 총지배인인 원고 A를 피고로 추가하였다.
한편 A는 위 송달을 받은 후 2016년 4월 29일 제1심 법원에 B에 대하여 이 사건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 미국법원은 2016년 9월 23일 피고 B의 E, C 및 원고 A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원고가 이에 대한 불복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확정되었다.
나. 판결 요지
외국법원에 계속 중인 이행소송의 인용판결이 장차 민사소송법 제217조에 의하여 승인받을 수 없음이 현재 외국법원의 소송 진행 단계에서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승인받을 수 없음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외국법원에 채무이행의 전소가 제기되어 있음에도 대한민국 법원에 채무부존재확인의 후소를 제기하는 것의 확인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사건 미국법원에서 A와 통상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원고에 대한 당사자추가신청을 허가한 것은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68조에서 정한 필수적 공동소송인의 추가만을 허용하는 규정과는 어긋나는 점이 있기는 하나,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외국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 해설
이 사건에서는 당초 피고가 E만을 상대로 이 사건 외국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이 사건 미국법원이 그 소송절차 진행 중 피고의 신청에 따라 원고 등을 당사자로 추가하는 것을 허가하여 진행하였는데, 이는 E와 통상공동소송의 관계에 있는 원고에 대한 당사자추가로서 필수적 공동소송인의 추가만을 허용하는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68조의 규정과 맞지 않아, 해당 판결이 승인되지 않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판결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고, 결국 확정된 캘리포니아 주 법원의 판결이 승인되지 않을 우려가 적다고 보아, 원고가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판시한 것이다.
윤병철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