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에 대한 시효취득은 우리나라 전통 관습으로 볼 수 없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관습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분묘기지권은 분묘가 비록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분묘와 주변의 일정면적의 땅에 대해서는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관습법상 권리를 말한다.
손경찬 연세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최근 경북대 법학연구원이 발행하는 '법학논고'에 발표한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 논문에서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은 전통법제에 있었던 관습이 아니다"며 "일제 강점기 조선고등법원에서 '창출'된 관습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현재 대법원 판례에서 분묘기지권의 성립이 인정되는 것은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받은 경우 △분묘를 설치한 자가 본인의 토지를 타인에게 매매한 경우 △타인소유 토지에 대해 20년간 점유해 취득시효를 완성한 경우 등이다.
손 교수는 "조선시대 재판사료 및 개화기의 평리원 한성재판소의 판결례를 살펴볼 때 승낙형 분묘기지권과 매매에 의한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사례를 뒷받침하는 '유사한 관습'은 다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반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고등법원은 1927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대해 '타인의 토지에 그 승낙을 얻지 않고 분묘를 설치한 자라도 20년간 평온 또는 공연하게 분묘기지를 점유할 때는 시효로 인해 타인의 토지에 대해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취득하는 것으로 한다. 이 권리에 대해서는 증명 또는 등기를 받은 것이 없어도 이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 관습'이라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묘에 대한 '시효취득'이라는 관념은 전통법적인 관념이 아니라 식민지 법정에서 창출된 관습으로 볼 수 있다"며 "오히려 전통법제 시대에는 암장(暗葬·몰래 남의 묘지나 산에 묻는 매장)이나 늑장(勒葬·명당이라고 소문난 남의 땅·마을·무덤 가까이에 강제로 묘를 쓰는 것 )의 경우 점유한 자의 취득시효가 인정되기 보다는 원토지 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불법적인 장례를 치른 당사자에게는 형사처벌도 행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적 안정성을 위해 분묘기지권을 폐지하지 않는 대법원의 판단에는 동의하지만, 취득시효에 의한 분묘기지권의 취득은 전통적인 '관습법' 혹은 '관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을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타인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는 점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관습 또는 관행으로서 법적 규범으로 승인되어 왔고, 이러한 법적 규범은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