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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권의 남용과 선의의 제3자

LBA 효성공인 2018. 7. 9. 21:30

대리권의 남용과 선의의 제3자

   


-  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6다3201 판결을 중심으로 법률신문의 기고문지원림 교수 (고려대 로스쿨) 을 보고  - 

1. 사실관계

대상판결에 소개된 원심의 사실인정을 필요한 범위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⑴ A는 친권자(편의상 부)로서 원고(이해를 돕기 위하여 자녀라고 함)를 대리하여 2011년 6월 30일경 B(악의의 매수인)에게 甲 부동산을 매도하고 B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


⑵ B(악의의 매수인)는 2013년 8월 26일 甲에 관하여 피고(선의의 전득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


⑶ 원고(본인;위의 예에서 아들)는 B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위 매매계약이 원심법원 A의 친권 남용에 의해 체결된 것이어서 그 효과가 원고에게 미치지 않으므로, B가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인정되지 않으면 자녀가 부를 고발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가정도 있을 수 있음)


B(피고가 아닌 악의의 매수인)가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었다.


⑷ 원고(위의 예에서 자녀)는 B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이므로, 이에 터 잡은 피고(선의의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 역시 원인무효라고 주장하면서 그 말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 소송의 경과


원심은, 위 매매계약은 친권자 A에 의한 대리권 남용행위에 따라 체결된 계약으로서 그 효과는 원고에게 미치지 아니하는바, 위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한 B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원인무효의 등기이고,


무권리자인 B(악의의 매수인)가 피고에게 甲을 매도하였다 하여도 아무 효력이 없는 것이어서 피고 명의의 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되지 않은 무효의 등기라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⑵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법정대리인인 친권자(父)의 대리행위가 객관적으로 볼 때 미성년자 본인에게는 경제적인 손실만을 초래하는 반면,


친권자나 제3자에게는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이고


그 행위의 상대방이 이러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선의일 때)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제107조:진의 아닌 의사 표시;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한 것이라도,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한다. 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의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행위의 효과가 자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나,


그에 따라 외형상 형성된 법률관계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법률상 이해관계를 맺은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같은 조 제2항의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누구도 그와 같은 사정을 들어 대항할 수 없으며, (선의의 제3자에게는)


제3자가 악의라는 사실에 관한 주장·증명책임은 그 무효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는 법리를 제시하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즉 악의의 매수인이 가자고 있으면 돌려주어야 하나 제3자에게 이전시키면  본인은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는 의미)

3. 검토


⑴ 대리권의 남용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대리행위의 상대방이 대리인의 배임적 의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하여 대리행위의 효력을 부정할 것이라는 종래의 입장(대판 2001. 1. 19. 2000다20694 등)을 확인한 후,


한 걸음 나아가 같은 조 제2항도 유추적용되어 선의의 제3자가 보호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판시가 선례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행위능력제도에 비추어)


⑵ 논의의 전제로서 행위능력제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흔히 행위능력제도가

제한능력자 본인의 보호와 함께

거래의 안전에도 이바지한다고 ‘오해’되기도 한다. (하나가 보호되면 다른 하나는 제한됨)


그러나 행위능력제도에 의하여 상대방의 이익, 나아가 거래의 안전이 침해될 위험이 있지만,

민법은 이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정신적 능력이 불완전한 제한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결단을 내린 것이다(지원림, 민법원론, [1169] 참조). 대판 2007. 11. 16. 2005다71659, 71666, 71673도


행위무능력자제도는


■사적자치의 원칙이라는 민법의 기본이념, 특히, 자기책임원칙의 구현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거래의 안전을 희생시키더라도 행위무능력자를 보호하고자 함에 근본적인 입법취지가 있다”고 하였다.


제한능력을 이유로 취소하는 경우에 선의의 제3자가 보호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⑶ 이제 대리권의 남용에 민법 제107조 제2항을 유추하는 대상판결의 입장이 적절한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① 대리권의 남용도 넓은 의미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데,


권리남용으로 되어 대리권이 부정된다면 대리행위의 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되지 않아서 본인이 보호되는 반면,


그 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될 것으로 믿은 상대방이 예기치 않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여기서

●본인과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다양한 이론이 주장되고,


판례나 다수설은 민법 제107조(비진의 의사표시규정)를 '유추'하여 상대방의 보호범위를 결정한다(심리유보설;진의 아님을 알면서 하는 의사표시:효력인정하는 이론 즉 당사자끼리 대리권은 인정 안 되어도 선의의 제3자에게는 인정이 된다는 의미이며 제한 능력자 본인의 보호는 축소됨).


그러나 적어도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에서는 제한능력자 보호라는 민법의 근본결단(민법의 사적자치와 신의칙의 원칙이 훼손을 각오하고라도) 이 존중되어야 하므로,


대리권이 남용된 경우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긍정되더라도 대리행위의 효과가 본인인 제한능력자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거래의 안전과 신의칙이 희생되더라도


그렇지 않으면 법정대리권이 제한능력자의 보호라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로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경우에 상대방의 보호는 외면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긍정되는(대리권남용이 인정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되지만,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권의 남용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경우에


상대방은 민법 제135조(무권대리인의 상대방에 대한 책임;①타인의 대리인으로 계약을 한 자가 그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또 본인의 추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상대방의 선택에 좇아 계약이행 또는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②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을 때 또는 대리인으로 계약한자가 행위능력이 없는 때에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에 기하여 대리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할 것이다(지원림, 민법강의 제15판. [2-299a]).


② 위와 같은 필자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상판결의 입장에 수긍할 수는 없다.


즉 판례나 다수설은 민법 제107조(선의의 제3자)를 ‘유추’하여 상대방의 보호범위를 결정하는데(심리유보설;진의 아님을 알면서도 하는 의사표시 ), 선의·무과실인 대리행위의 상대방에 대해서는 남용의 효과(;대리인의 남용=대리인의 남용차단 효과는 손해배상 규정으로 가능하다 할 수 있음;옮긴이의 설명)를 차단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유추는 대리행위 상대방의 보호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법률구성의 ‘차용’일 뿐이다.


그런데 제3자의 신뢰를 어떤 요건 하에서 어느 정도로 보호할 것인지는 입법정책의 문제이지만,


신뢰의 보호가 강행규정이나 민법의 근본결단에 우선할 수는 없다.

 즉 법률행위제도를 통하여 사적자치를 기본원칙으로 승인한 민법 하에서 거래의 안전, 즉 신뢰의 보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정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실현될 수 있고, 함부로 유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 악의 제3자로부터의 선의의 전득자(대판 2013. 2. 15. 2012다49292)

■또는 선의 제3자로부터의 악의의 전득자(채권양도금지특약에 관한 대판 2015. 4. 9. 2012다118020)는 법이 허용하는 신뢰보호의 연장선상에서 제3자 보호규정의 적용범위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그 밖의 경우에까지 선의 제3자의 보호에 관한 규정을 유추함은 해석의 범위를 넘어서는 법형성에 해당한다. (행위무능력자에게는)

따라서 민법 제107조 제2항도 유추의 대상이라는 결론은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③ 백번 양보하여 민법 제107조가 전부 유추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의 경우에는 같은 조 제2항이 유추되어서는 안 된다.


재산법의 영역에서 권리의 외관에 대한 신뢰는 예외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효력규정이나 사회질서 등과 저촉되는 경우에 신뢰보호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에도 민법 제107조 제2항(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이 유추된다고 한다면, 제한능력자의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가 몰각된다. 오히려 제한능력자 보호라는 이념은 그를 위한 법정대리제도의 운용에서도 원칙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따라서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권의 남용에 민법 제107조 제2항(선의의 제3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④ 한편 대표권남용과의 정합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대표권의 남용에 관하여 판례는 종래 주로 심리유보설을 따랐으나(대판 1997. 8. 29. 97다18059 등),


최근 대리행위 상대방의 (중)과실 유무를 따지지 않는 신의칙설(비진의 의사표시;즉 본인이 제3자의 악의를 입증)을 따르는 판례가 늘고 있다(대판 2016. 8. 24. 2016다222453 참조). 이 입장에 따르면 대리권의 남용에서보다 상대방의 보호범위가 넓어진다.


그런데 신의칙설에 따르면 대리행위 상대방의 보호범위가 넓어지지만


상대방이 보호되지 않는 경우에 그와 이해관계를 맺은 제3자는 선의이더라도 보호되지 않는 반면,


대상판결의 입장을 따르면 상대방의 보호범위가 좁아지지만 상대방이 보호되지 않더라도 그와 이해관계를 선의의 제3자가 보호된다.(즉 대리인에게 손해배상을 물으면 됨) 이러한 상반된 결과가 본인의 보호 및 거래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⑷ 거래의 안전, 즉 신뢰의 보호는 진정한 권리자의 불이익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제한능력제도는 제한능력자의 보호를 위한 법의 근본결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한능력자에게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상판결처럼 제한능력자를 위한 법정대리권의 남용에 민법 제107조 제2항을 유추하면 그로 인하여 제한능력자의 보호라는 민법의 근본결단에 반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대상판결의 입장은 선례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급히 변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