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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리권을 수여하는 것을 수권 행위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위임장에 구체적으로 꼼꼼히 기재하여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주면서 구두로 매매계약을 대리하여 체결해달라고 약속하는 것으로 끝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대리인이 계약을 잘못 체결하면 고스란히 그 몫은 본인이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임장을 굳이 작성하지 않고도 본인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만으로 부동산 매매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민법은 대리권이 있는 것과 같은 외관이 존재하고, 그 외관에 대하여 본인이 원인을 준 자는 본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표현대리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타인에게 제공하기만 하면, 그 계약에 대한 대리권을 주었다고 보고, 계약이 본인에게 유효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 매매계약 체결을 위임받은 대리인은 계약 체결 및 매매 대금 수령, 소유권 이전 등기, 대금 지급 기일 연기 권한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그 대리인은 체결한 계약을 다시 해제하거나, 매수한 부동산을 전매할 권한은 없다.
이에 따르면 위 사례에서 B는 매매계약 체결에 대한 A의 대리인이므로,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매매대금을 수령할 권한은 있다. 하지만 매매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에는 매매계약을 해지할 권한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리인이 마음대로 상대방과 다시 매매계약을 해지하더라도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상대방인 C가 계약을 합의 해지하려면 대리인이 아닌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대방 C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대리인이 계약 당시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해지할 권한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매매 잔금을 전부 지급하여 매매계약 완료로 대리권이 소멸하였음을 알 수 있었으므로 본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배기하 한솔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