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월 상환하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세금, 유지관리비 등을 고려한다면 내 집 마련보다는 주택을 임차해 사는 것이 더 싸다. 더군다나 부동산 경기가 바닥인 요즘 집을 구입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택 임차와 구매에 관한 논쟁을 압도하는 주장이 하나 있다. 서던캘리포니아대 리처드 그린 교수는 “내 집이 곧 내 돼지 저금통”이라고 표현한다.
주택 임차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집을 빌려 살면서 절약한 돈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30년 뒤에는 집을 산 경우보다 더 부자가 돼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반면, 임대를 선택한 사람들은 집 대신 좋은 차, 좋은 옷,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더 많은 소비를 한다. 그러다 보면 30년 뒤에도 가진 돈은 그대로요, 집도 없이 살고 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잭 오터는 “집은 매달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강력한 강제 저축 수단”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금리도 연 4% 안팎이어서 자금을 저렴하게 빌릴 수 있고, 주택 구입 시 소득공제(기준 시가 3억원·전용 85㎡ 이하 주택, 1천만원 한도) 혜택도 있다. 만일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쳐든다면, 매월 상환하는 원리금의 실질 비용은 감소하는 반면 임차료는 증가한다. 나쁘지 않은 거래다. 대출금 상환 기간이 끝나면 온전히 내 집이 주는 마음의 평안도 얻을 수 있다.
같은 지역에 있고 규모도 비슷한데 하나는 오래된 집이고 하나는 최근에 지은 집이라면 어떤 집을 사는 것이 좋을까? 잭 오터는 “어느 쪽이든 싼 집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신규 건설이 이전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주택 압류와 깡통주택 급매물 때문에 기존 주택의 공급이 크게 증가했으며,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압류 주택도 잔뜩 대기하고 있다. 따라서 신규 주택 가격이 기존 주택보다 거의 50%나 높다(평소에도 이 차이가 약 15%였다).
한국에서도 금융위기 이후 신규 주택과 기존 매물의 가격 격차가 더 많이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담보 가치가 하락하자 대출로 집을 산 많은 이들이 ‘하우스 푸어’ 신세로 전락했다. 경매 물건 및 급매물의 매매가는 더욱 큰 폭으로 떨어졌다. 최근 경매 시장에는 ‘반값 아파트’까지 등장하고 있다. 물론 기존 주택이 절대적으로 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에 미분양 아파트와 더불어 신규 아파트도 분양가를 낮추면서 같은 지역의 기존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가 더 저렴한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러한 새 주택들 가운데 저렴한 곳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과거에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로 노후 주택이 더 비싼 기현상도 있었으나, 이런 상황은 더 이상 재현되기 어렵다).
물론 비싼 프리미엄을 주고 신규 주택을 사면 좋은 점도 있다. 최신 건축 기준에 따라 배선·방열·방음 처리가 되고, 설계도 현대적이며(근사한 붙박이장 등), 모든 것이 반짝거리는 신제품이다. 그러나 새집 근처에는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져 있을 것이며, 조경에 거금을 쏟아부어도 오래된 나무가 드리우는 풍성한 그늘은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다. 집을 마련할 때 이 점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면 좋은 영향을 받는 것처럼 부동산도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국 부동산 전문가 일라이스 글링크는 이렇게 말한다. “불량 주택가의 최고급 주택을 사는 것은 이른바 ‘애물단지’를 장만하는 것과 같다. 주택의 가격은 동네가 좌우한다. 내 집을 아무리 잘 가꿔도 동네 집값이 전반적으로 상승해야 내 집 가격도 상승한다.” 반면 고급 주택가에서는 최하급 주택을 사더라도 장차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고급 주택가의 최하급 주택을 사면, 그 집을 동네 평균 수준으로만 개량해도 가치가 상승한다.
물론 방 개수를 늘리거나 수영장 등 편의 시설을 갖추려고 저렴한 주택가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투자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의 3대 요소는 예나 지금이나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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