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 구호가 아니다. 뒤처진 우리나라 해외투자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펀드 시장(MMF 제외)의 국내 주식·채권 투자 비중은 78%에 달한다.
수년 전 우리나라와 더불어 MSCI 선진국지수 승격 후보 1, 2순위를 다퉜던 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한때 우리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지금은 37%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래도 투자의 민도(民度)를 점수로 매긴다면 우리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대만 펀드 시장의 해외투자 비중은 57%로 우리나라의 세 배에 육박한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의 해외자산 투자 비중도 2012년 말 40%에서 올 1월 58.7%까지 급상승했다. 한국(9.3%)은 물론 일본(20.5%) 생보사들보다도 훨씬 높다. 수년 전부터 달러화 국채 등 해외 먹거리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는 얘기다.
물론 주력이었던 반도체 전자부품 등 IT산업이 한국 중국에 밀려 자국에서는 이렇다 할 성장 산업을 찾기 어려워진 요인이 컸다. 우리보다 저금리도 일찍 찾아왔다. 하지만 대만 대형 생보사인 푸본(Fubon)은 지난해 전체 투자자산의 47%를 해외 채권에, 6.3%를 해외 주식에 배정할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덕분에 어려운 자국 경제 여건 속에서도 지난해 투자수익이 20% 이상 증가했다. 저금리 타령만 하며 주주들에게 배당조차 제대로 못하는 국내 생보사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 개미들의 투자 성적표는 더 형편없을 게 뻔하다. 3%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시대에선 솔직히 코스피가 장기 우상향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펀드 투자로 연 15%의 이익을 기대한다고 하니 불완전판매를 꼭 금융회사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100조원을 넘어선 주가연계증권(ELS) 등 소위 `도박형 상품`에 몰빵하는 것은 폭탄을 안고 불섶에 뛰어드는 격이다. 저금리·저수익 시대를 빨리 인정하고 대응책을 찾는 투자자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노후 연금자산 등이 선진국에 턱없이 모자라는 우리 가계로선 연 1~2%대 은행 이자에만 만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법은 투자의 X축과 Y축을 동시에 늘리는 길밖에 없다.
X축은 투자 대상국 확장과 분산투자다. 가급적 성장잠재력이 높은 나라일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신흥국 몰빵은 곤란하다. `해외 펀드`라고 하면 아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공무원의 탁월한 식견(?) 덕분인지 하필이면 1차 해외 비과세펀드가 나온 게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이었다. 당시 수십조 원이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펀드에 몰렸고, 결국 반 토막이라는 참사를 남겼다. 이번에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증시 상투 논란이 거센 올해에야 2차 해외비과세 주식펀드가 나왔다. 타이밍은 역시 `글쎄올시다` 쪽에 가깝다. 그나마 대상국을 중국 글로벌 베트남 미국 유럽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정부가 `펀드 패스포트`를 통해 2018년께부터 호주 일본 뉴질랜드 펀드 등을 국내에서도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허용 시기를 하루라도 앞당기는 게 나을 것이다. 이왕이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이미 결성한 `아세안(ASEAN) 펀드 패스포트`에도 가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Y축은 냄비근성에서 벗어나는 장기 투자다. 아직도 중국·베트남·브라질펀드에 잘만 투자하면 몇 달 새 20~30%를 남길 것이라고 환상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다. 물론 운이 좋으면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은 투자가 아니라 요행이다. 어쩌다 한번은 대박을 내겠지만 몇 번 반복하면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그 유명한 피터 린치의 마젤란펀드가 13년간 한 해도 손실 없이 2700%라는 초대박을 냈는데도 고객 중 절반은 손해 보고 나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존 리 대표가 하반기 `10년 환매금지` 조건으로 베트남주식펀드를 내놓겠다는 소식이 그래서 더 반갑다.
[설진훈 증권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