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이론

금융시장을 정복한 퀀트 4인방

LBA 효성공인 2016. 5. 11. 19:41

정복한 퀀트 4인방 금융공학 | 2013/09/25 15:57 | 금융공학을 말하다 앱으로 보기


고도의 수학과 통계지식을 이용해서 투자법칙을 찾아내는 금융시장 분석가 ‘퀀트(Quant)’. 앞서 소개해드린 ‘퀀트의 대부' 에드워드 소프가 퀀트 분야를 개척한 이후 또 다른 퀀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개발한 분석법, 투자기법들은 현재의 금융투자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일조를 했습니다.

수많은 퀀트 중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둔 특출한 4인방이 있습니다. 클리프 애스니스, 피터 멀러, 케네스 그리핀, 보아즈 웨인스타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지금도 금융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4명의 퀀트. 이들의 활약상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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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에도 패턴이 있다, ‘클리프 애스니스’

‘당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You cannot beat the market)’. 투자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많이 듣게 되는 말인데요, 시장을 ‘이긴다(beat)’ 말은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는 것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증권시장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말은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효율적 시장가설’은 시카고대 교수 유진 파머(Eugene Fama)가 주장한 것으로, 주식시장에서 새로운 정보가 주어지면 그 정보가 신속하게 즉, 효율적으로 주가에 반영되고 그 정보에 의해 주가가 무작위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투자자가 새로운 정보를 접한 후 주식시장에 들어가면 주가는 이미 그 정보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변동된 상태이므로 이익을 내기 어려워 진다는 것이죠. 

그는 펀드매니저와 침팬지를 대결시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펀드매니저들이 선택한 종목의 수익률과 침팬지가 다트를 던져 선택한 종목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니 큰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었죠. 그는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을 최초로 개발했고, ‘포트폴리오 이론과 자본시장(Portfolion Theory and Capital Markets)’이라는 현대 재무학 강의를 1970년대에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유진 파머 앞에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가 나타납니다. 그것도 같은 시카고대에서 말이죠. 그 인물이 바로, 후에 퀀트로 변모할 클리프 애스니스(Cliff Asness)입니다. 유진 파머와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던 클리프 애스니스는 자신의 주식수익률 데이터가 무작위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멘텀을 보여 효율적 시장가설과 배치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모멘텀(Momentum)
원래는 물리학 용어이나, 금융 분야에서는 주가 추세의 속도가 증가 또는 감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쓰입니다. 주가가 계속 상승하더라도 모멘템의 기울기가 떨어지면 주가하락을 예상할 수 있고, 주가가 계속 하락해도 모멘텀의 기울기가 오르면 주가상승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시장의 움직임에 어떤 패턴 있다’라는 클리프 애스니스의 주장은 ‘시장은 무작위적이다’라는 유진 파마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지만, 유진 파마는 클리프 애스니스의 계량연구 결과를 인정하고 논문 지도를 해주었습니다. 클리프 애스니스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골드만삭스자산관리에서 계량연구그룹(Quantitative Research Group)을 발족시켜 큰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클리프 애스니스는 졸업 후 골드만삭스를 거쳐 현대 계량금융펀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AQR 캐피털 매니지먼트(Applied Quantitative Research Capital Management)를 창립합니다.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격패턴을 찾아내고 가치주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는데 성공합니다. 

‘무작위’의 인문학
‘무작위’를 핵심으로 하는 효율적 시장가설의 기원은 프랑스 수학자 루이 바쉴리에(Louis Bachelier)입니다. 1900년 프랑스 증시의 주가 변동을 분석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쓴 그는 ‘채권 가격은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처럼 무작위적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브라운 운동’은 1827년 스코틀랜드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 (Robert Brown)이 물에 떠 있던 꽃가루 입자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발견한 것입니다. 로버트 브라운은 꽃가루 입자가 매우 광란적으로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 후, 미소입자들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그의 이름을 따 ‘브라운 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과학 분야에서 ‘브라운 운동’이라고 부른다면, 수학 분야에서는 ‘랜덤워크random walk)’라고 부릅니다. 이는 무작위적으로 변하는 확률변수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랜덤워크(random walk)’라는 표현은 1905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걷는 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랜덤워크’라는 말은 금융 분야에도 옮겨와 무작위적인 통계나 현상을 나타낼 때 쓰이곤 합니다. 


로봇이 투자를 결정한다, ‘피터 멀러’ 

‘헤지펀드(hedge fund)’로 유명한 퀀트 중 한 명이 피터 멀러(Peter Muller)입니다. 헤지펀드는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고 위험을 줄이고자 공매도를 하는 방식의 금융상품을 말합니다. 

수학 귀재이기도 한 피터 멀러는 프린스턴대 졸업 후 1980년대 중반 당시 잘 나가던 바라(BARRA) 사에 취직합니다. 이 회사는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였던 바 로젠버그(Barr Rosenberg)가 1974년에 설립한 금융공학 회사로, 1985년 서부 퀀트계를 주도했습니다. 1989년 피터 멀러가 담당했던 한 고객사가 당시 헤지펀드로 유명한 금융기업이었는데요, 이에 피터 멀러도 자연스레 헤지펀드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모건스탠리 내부 헤지펀드 부서의 대표를 맡게 된 그는 퀀트로 구성된 드림팀을 이끌었고, 1994년 자동트레이딩 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 로봇 시스템은 가격이 올라간 주식은 공매도하고 가격이 내려간 주식은 매입하는 방식을 취했는데요, 매도 시기와 매입 시기는 전적으로 로봇의 결정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로봇을 이용해 수익을 내던 피터 멀러. 하지만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가 나오는 등의 긴급한 상황에서는 사람의 판단에 의지해 결정을 내렸는데, 오히려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로봇의 판단에만 전적으로 의지했고,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초의 헤지펀드
역사상 최초의 헤지펀드는 앨프레드 윈슬로우 존스(Alfred Winslow Jones)가 1949년에 설립한 펀드였습니다. 수학, 화학, 사회학을 전공하고 여러 직장을 거친 그는 네 명의 친구와 함께 투자조합을 만들어 헤지펀드를 개발했습니다. 1966년, 앨프레드 존스의 헤지펀드가 수익률이 가장 높은 뮤추얼펀드보다 2배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면서부터 1960년대 들어 헤지펀드의 수량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기숙사에서 블랙 먼데이를 비웃다, ‘켄 그리핀’

피터 멀러와 함께 헤지펀드로 크게 성공한 퀀트가 있습니다. 바로 하버드대 출신의 켄 그리핀(Ken Griffin)입니다. 그는 1987년 하버드대 1학년을 마친 후 친구와 친지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컨버터블 헤지펀드 넘버원’이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에드워드 소프의 투자전략을 이용해 저평가된 워런트를 매수하고 주식을 공매도해서 수익을 올렸습니다. 켄 그리핀이 수익을 올리던 바로 그 시기, 미국 증권시장에는 검은 그림자가 닥쳤는데요, 미국 증권이 대폭락하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가 터진 것입니다. 증권시장에 뛰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던 바로 그 날 켄 그리핀은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금융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수익을 올렸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증권가의 어느 사무실도 아닌 대학교 기숙사에서 자금을 운영하며 이룬 결과였습니다. 블랙 먼데이 이후 켄 그리핀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미국 뉴욕에서 주가 대폭락이 있었던 1987년 10월 19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블랙 먼데이 즉, ‘암흑의 월요일’이라는 말은 뉴욕의 다우 존스 평균주가가 하루 만에 508달러(전일 대비 22.6%)나 폭락한 1987년 10월 19일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켄 그리핀은 1990년, 학교를 졸업한 후 자금을 모아 시타델(Citadel)이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한 이후에도 계속 승승장구합니다. 펀드 설립 후, 1994년에 4%의 손실을 냈던 것 외에는 2007년까지 단 한 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을 만큼 기록적인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시타델에는 트레이더로 활동하는 사람보다 IT인력이 더 많다고 하는데요, 시타델은 모든 트레이딩 전략을 자동화하여 컴퓨터 스스로 모든 트레이딩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퀀트가 아닌 로봇 퀀트가 금융거래를 자동 처리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죠. 로봇의 결정에 의지하는 피터 멀러와 비슷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아마도 이런 로봇 퀀트가 첨단 금융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용부도스왑(CDS)의 제왕, ‘보아즈 웨인스타인’ 

퀀트는 일반적으로 두뇌게임에 능숙합니다. 체스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퀀트로 보아즈 웨인스타인(Boaz Weinstein)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6살 때 그는 미국체스연맹이 수여하는 체스 타이틀인 라이프 마스터(life master) 자리에 올랐습니다. 라이프 마스터는 최고 수준인 그랜드마스터(grand master)보다 조금 낮은 단계로, 역시 상급으로 인정받는 단계입니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금융투자회사 메릴린치에서 근무하다가 상업은행에서 파생상품 강자로 변신을 꾀하던 독일은행 도이치뱅크로 이직해 이름을 날렸는데, 이곳에서 신용부도스왑 거래로 큰 수익을 올립니다.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
부도나 파산으로 인해 채권이나 대출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손실을 입게 되는데, 이러한 손실을 다른 투자자가 대신 보상해주는 신용파생상품을 말합니다. 기업 부도위험 같은 신용을 사고 파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아즈 웨인스타인이 도이치뱅크에서 신용부도스왑 거래에 썼던 전략은 사실 자신이 이미 고등학교에서 써먹던 전략이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주식종목선택 대회에서 5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때 그가 선택한 전략이 가격이 많이 오른 주식은 매각하고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거의 파산 직전의 종목을 매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전략을 실제 신용파생상품 거래에도 사용해 수익을 낸 것이죠. 
그의 활약은 2011년에도 유명세를 떨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이치뱅크에서 나와 헤지펀드 사바캐피털을 설립한 보아즈 웨인스타인. 그는 2011년 11월 한 CDS의 가격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계산한 정상가에서 벗어난 가격으로 계속 거래가 되고 있었던 것인데요, 그는 이 CDS의 ‘팔자’ 주문에 맞서 ‘사자’ 주문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보아즈 웨인스타인이 이상하다고 여겼던 주문은 JP모건이 어떤 거래 상대방을 위협하고자 진행한 주문이었습니다. JP모건이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팔자’ 주문을 계속 해나간 반면, 보아즈 웨인스타인은 비정상적인 가격이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과 이론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자’ 주문을 계속 유지해 나갔습니다. 

2012년 1월 CDS 가격이 떨어져 보아즈 웨인스타인의 손실액은 투자액의 20%까지 불어났습니다. 그러다 2월 뉴욕에서 열린 헤지펀드 투자컨퍼런스에서 그는 이 CDS를 추천했고, 투자자들이 그를 믿고 이 CDS 거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해 5월이 지나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자 CDS 가격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막대한 ‘팔자’ 주문을 했던 JP모건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CDS를 사들였던 웨인스타인은 그간의 손실을 만회하며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도끼에 발등 찍히다 

천재적인 재능과 기록적인 성과를 보여준 이들 퀀트도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습니다. 정밀하게 만든 금융 공식에도 불구하고 다들 피해를 보고만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금융위기를 가져온 사람들이 바로 퀀트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개발한 금융기법, 금융시스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효과를 보이면서 결국 자신을 위협할 금융위기 상황을 만들고 만 것이죠. 스캇 패터슨의 저서 ‘퀀트’라는 책을 보면 2008년 금융시장의 붕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2008년의 위기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금융위기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원인이 숨어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당시 아이작 뉴턴은 학문에만 열중했던 것은 아닙니다. 뉴턴도 금융시장에 뛰어든 적이 있었는데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 뉴턴도 투자에서 큰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인간의 광기와 욕망이 뒤섞여 금융시장을 만들어냈고, 그곳에서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았습니다. 예측하고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야말로 금융의 시작이자 끝이고, 위기이자 기회일지 모를 일입니다. 
 

*참고도서: ‘퀀트 -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수학천재들 이야기’ (스캇 패터슨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