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보증금 믿고 밀린 월세 방치했다간 떼일수 있어
Q. 저는 임차인 A씨와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80만원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집주인입니다. A씨는 임대 첫 해 월세를 꼬박꼬박 제때 내다가 해가 갈수록 차임지급을 한 두 달씩 거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보증금에서 공제하면 되겠다 싶어 그냥 놔뒀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A씨는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면서 연체 차임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됐기 때문에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또 그동안 아파트 관리비도 연체했는데 관리비는 시효 완성은 물론 차임이 아니기 때문에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연체 차임과 관리비를 받을 수 있을까요? A.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내는 차임은 '사용료(민법 제163조 제1호)'에 해당하며 단기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됩니다. 이는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입니다. 임대인의 경우 연체 차임을 독촉하지 않고 3년이 지났으면 일단 소멸시효는 완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차임 지급을 연체하면 곧바로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진행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다면 자동으로 공제되는 건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대차보증금이 임대인에게 교부돼 있더라도 임대인은 임대차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임대차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을 충당할 것인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임대차계약 종료 전에는 연체차임이 공제 등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임대차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는 것은 아닙니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49608, 49615 판결) 그렇다면 집주인은 소멸시효 3년이 지나 연체차임을 보증금에서 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법의 상계 법리를 이용하면 A씨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민법 제495조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그 완성 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채권자는 상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를 이번 사건에 적용하면 집주인은 차임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완성 전에 이를 보증금과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차임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상계를 통해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상계 요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상계적상) 공제가 가능하지만 만약 집주인이 차임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했다면 차임채권자와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자(집주인)가 달라져 차임채권의 시효 완성 당시 차임채권과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상계적상에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계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의 경우 상계 요건을 갖추지 못해 차임채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봤습니다. 아울러 임대차계약에서 관리비채권 역시 3년의 단기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됩니다. 판례는 임대인이 3년 이상 동안 관리비채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보증금에서 밀린 관리비를 당연히 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집주인은 연체 차임은 물론 체납관리비까지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 체크리스트 임대인 입장에서는 보증금 액수가 넉넉하다고 생각해 차임이 체납됐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상계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경과해 버릴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이구일 변호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에서 기업법무와 부동산·건설분야 업무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서 부동산·건설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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