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산업이 새로운 틀에서 살아남기 위한 메모(3)
한국의 건설회사
금년 경제는 좋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제도나 시책에 많이 기대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스스로 일감을 찾지 못한다면 몸집을 확 줄여서 전문 공종을 택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건설시장은 지난 50여 년 간 많은 역량이 축적되어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의 역량도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공사를 제외하고는 기술역량보다 관리역량, 즉 얼마나 크고 복잡한 공사를 관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기업집단들이 백화점 식 경영을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룹순위와 건설회사 순위가 비슷한 나라는 아마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건설회사들은 전 공종, 전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형회사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중견건설회사들도 토목/건축/주택/플랜트 전 공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건설업을 영위하는 사업주나 CEO들 중에도 토목, 건축, 주택, 플랜트가 각각 다른 기술적, 계약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러운 견해이지만 과거 나눠주기, 나눠먹기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선진국의 회사들은 자기가 전문으로 하는 공종에서 진출지역을 선별하되 발주자가 원하는 다양한 업무범위로 사업을 수행합니다.
1898년 설립된 미국의 벡텔은 중건설(重建設, Heavy Construction), 즉 토목과 플랜트 공종에서 기본설계부터 시공, 운영까지를 전 세계에서 수행합니다. 발주자가 원하면 사업관리만 하기도 합니다. 일본의 수퍼제네콘들은 토목, 건축만 합니다. 다케나카 고무텐(竹中工務店)은 1610년에 설립되었고 다른 회사들도 에도시대 초기 도시건설부터 참여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와 시장구조를 갖고 있어서 우리 기업들도 가끔 벤치마킹을 합니다만, 우리와 다른 것은 매우 보수적이고 조심스런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플랜트공사는 중공업회사나 오랜 역사를 가진 엔지니어링회사들이 합니다. 한국건설회사와 손잡고 해외에 진출하자는 제안도 있지만, 전제는 자기들은 설계와 기기제작을 할 테니 한국회사는 영업과 시공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택회사들은 건설회사나 중공업회사와 별개로, 부동산관련 사업에 정통하여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기업형 임대사업을 진작에 시작했습니다.
근년 들어 해외플랜트 사업에 대하여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플랜트공사의 주 계약방식인 EPC(설계-자재조달-시공)공사수행에서 핵심설계는 선진국 엔지니어링회사에서, 주요 설비 장치는 외국 제작회사로부터 주로 납품을 받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시공부분, 즉 작업자들의 생산성 경쟁입니다. 선진국의 건설회사들은 군대로 말하면 하사관, 즉 매우 노련한 전문기술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현지에서 고용한 하도급회사들이나 기능공들을 리드합니다.
한국의 건설회사에는 장교만 있습니다. 그것도 주요보직만 국내에서 나갈 뿐 거의 현지회사에 하도급을 주므로 외화가득이나 고용창출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익이라도 많이 나면 주주들에게 좋으련만 그마저도 경쟁력을 상실한 결과로 주주에게 돌아갈 돈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도 아직 중국이 플랜트공사는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전 세계 고속철도 시장을 단기간에 장악한 것처럼 언젠가는 플랜트시장도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한국 건설산업의 새로운 틀 만들기
해외의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금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이념경쟁 단계를, 경제적으로는 개발 단계를 넘어섰고, 사회 시스템도 상당히 정착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유일의 휴전국이면서도 아주 전형적인 모범적 중진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부터 일선의 작업자들까지 소명(召命)의식은 많이 퇴색되고 하루하루 직장에 다니면서 개인과 가정생활에 충실한 직업인이 된 것 같습니다. 자원부국들은 국민들이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부자나라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가진 것이 머리밖에 없습니다. 머리만 갖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3차 산업이 건설산업입니다. 거시경제를 하는 분들은 산업구조 운운하지만 건설은 기본적으로 사회 안전망의 맨 바닥에 있는 산업입니다. 아무리 경제구조가 바뀌어도 GDP대비 10%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인프라에 계속 투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인프라만큼 전 국민에게 복지를 나누어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시장에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각 기업들은 그 틀 안에서 경영계획도 만들고 영업전략도 짭니다. 국가 경제나 기업경영의 제일 원칙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사업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뭄이 드는 바람에 요즈음 좀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평가하면서 시장에서의 자원동원 문제는 크게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이 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려면 노동력이 많이 동원되고 자재를 공급하는 제조산업이 살아야 합니다.
4대강 사업은 장비를 이용한 전형적인 토목공사입니다. 당시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장비 동원이었습니다. 장비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4대강 사업이 끝났을 때는 유휴장비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지금 사상 최대의 주택 물량이 공급되려 하고 있습니다. 주택건설은 대표적인 노동과 자재소요 사업입니다.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 입장에서는 주택만큼 시장에 빨리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급격한 자원왜곡현상은 경제의 또 다른 발목을 잡을 것이고, 건설회사들은 원가 압박에 시달릴 것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시장과 괴리되어있는 제도, 고령화와 생산성저하, 해외진출을 위한 금융의 역할, 글로벌 수준에 맞는 젊은 인재 양성 등 우리 건설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지금 정부가 총력을 다하고 있는 4대 개혁, 즉 공공, 노동, 금융, 교육분야에서 꼭 풀어주어야 할 절실한 대 명제들입니다.
지금 많은 건설회사들이 쓰러지고 젊은 이들은 건설현장을 기피합니다. 투자자가 떠나고 노동자가 떠나면 그 산업은 끝납니다. 이 현상을 오래 방치하면 중요한 인적자원들이 이 산업을 떠날 것입니다. 건설산업이 이렇게 빠르게, 크게, 확실히 변한 적은 없었던 같습니다. 많은 말씀을 드렸지만 결국은 지금의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정확히 파악해서 올바른 답을 내느냐 하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언제까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현상인식과 처방이 계속될 지….
우리 건설산업에서 발주자 역량을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문제라고 진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업들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지만, 기업들 스스로가 문제를 푸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건설시장에서 정부의 역할, 즉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의 역할이 크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기업들에게 예측 가능한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진화된 정부입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공무원들이 흔들림 없이 정책을 집행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시장도 선진화될 것입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핵심은 전문성과 책임의식입니다. 순환보직제도가 전문성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특히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이 바뀐
지금의 한국에서 투명성 문제 때문에 전문성이 훼손되는 것은 다시 검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통령 단임제가 책임 있는 일을 기피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제 혼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무원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책임질 일은 안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으로부터 나온 면피성 논리일 수도 있지만 공무원들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입니다. 대통령의 임기와 관계없이 행정부가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제도가 빨리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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