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내 남편 만나거나 전화하면 1억원' 각서 유효할까

LBA 효성공인 2013. 11. 26. 14:24
'내 남편 만나거나 전화하면 1억원' 각서 유효할까
한방 치료하러 갔다가 한의사와 눈 맞은 여교사
한의사 아내에게 각서 써 준 후 전화통화 '들통'
대법원 "부정한 만남에 한정"… 원고 패소 판결


아내가 남편과 만나는 여성에게 ‘내 남편에게 전화하거나 만나면 1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면 유효할까. 법원은 금액 지급 요건을 ‘부정한 연락이나 만남’으로 한정하는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부정한 내용이 아닌 일체의 만남이나 연락을 제한하는 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여교사 C씨는 2006년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C씨는 진료를 받으면서 한의원 원장 B씨와 친해졌고 사적으로 따로 만나는 사이게 됐다. B씨의 처 A씨는 둘이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C씨를 찾아가 만나지 말 것을 요구한 뒤 C씨가 일하는 학교에 C씨가 남편과 만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C씨는 경고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C씨가 자녀 2명을 둔 유부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지만 B씨와 C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만났다. B씨는 2010년 C씨에게 옷을 사입으라는 명목으로 50만원을 건네는 등 꾸준히 선물 공세를 펼쳤고, 2011년 4월에는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한달 뒤 A씨는 C씨를 찾아가 뺨을 때리며 “둘이 부산으로 여행간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쳤다. C씨는 결국 ‘A씨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고, 다시는 B씨의 전화를 받지도 않고 걸지도 않으며 만나지도 않겠다. 이를 어길 경우 위자료로 1억원을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써줬다.

하지만 각서를 쓴 후에도 둘 사이는 이어졌다. A씨는 어느날 남편의 전화통화 내역에서 C씨의 이름을 발견했고, C씨가 남편으로부터 국화 화분 2개를 선물받자 전화를 건 사실을 알아냈다. 격분한 A씨는 먼저 받기로 한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과 함께 “각서 내용을 어겼으니 약속대로 1억원을 달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1심은 “각서 자체는 손해의 배상을 예정해 놓은 것으로 유효하지만, 1억원이라는 액수는 과다하므로 C씨는 A씨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C씨가 작성한 각서는 ‘부정한 연락이나 만남’에 한정해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하는데, C씨가 부정한 연락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최근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패소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2013다63943).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각서 내용을 C씨가 ‘부정한 행위를 목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것을 제한하는 정도를 넘어, 일체의 연락이나 만남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한도에서는 C씨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무효가 된다”며 “C씨가 B씨가 보낸 국화 화분을 받고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약정을 위반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