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배임죄는 그 이론의 복잡성과 모호성 때문에 범죄 성립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고, 법원에서도 심급에 따라 유·무죄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배임죄는 잘못 입법된 것이므로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우리 배임죄에 대한 오해를 기초로 하여 외국의 법률과 법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탓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배임죄의 본질에 대한 오해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에서
◆배임죄는 신하의 주군에 대한 배신을 처벌하기 위한 범죄로 출발하였으나
◆1851년 프로이센 형법전에서 재산범죄로 전환되었다.
그 이후 배임죄의 본질을 두고
■권한남용설과
■배신설의 논쟁이 전개되다가,
1933년 권한남용설과 배신설을 포괄하는 입법을 하게 되었다.
■현행 독일의 배임죄는
▲'법률, 관청의 위임, 법률행위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을 처분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행하여야 할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률, 관청의 위임, 법률행위나 신뢰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위탁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자'를 처벌한다고 하여 권한남용요건과 배신요건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모순되는 두 요건의 해석을 두고 배임죄의 본질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 형법은, 독일 배임죄 규정에 있는 '신뢰관계'나 '타인의 재산상 이익보호의무' 등을 규정하지 않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 배임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문언을 충실히 해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배신설에 기초하여 우리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해석하거나,
●독일 형법의 규정을 우리 배임죄에 그대로 가져와서 이해하려는 태도는 부당하다.
3. 행위주체에 관한 오해
배임죄의 행위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다. 이것은 부동산 이중매매 사건에서 주로 논란이 된다.
판례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대하여
①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할 신임관계에 있고,
② 그 관계에 기하여 타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이 신임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하고,
③ 그 사무의 처리는 타인의 이익을 보호·관리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도 가지더라도 타인을 위한 사무로서의 성질이 부수적·주변적인 의미를 넘어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경우에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에는
④ 등기협력의무와 같이 자기의 거래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의 사무인 동시에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있는 경우도 '타인의 사무'에 포함되므로,
⑤ 매도인이 중도금을 수령한 후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기 사무의 처리라는 측면(권한 남용)과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라는 성격(배신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므로,
이러한 단계에 이른 후에 매도인이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행위는 매수인을 위한 등기협력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다.
독일 형법 제266조 제1항의 후단은 '신뢰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지만, 우리 형법에는 '신임관계' 또는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는 규정이 없다. 따라서 판례가 말하는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를 우리 형법에서 도출할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배임죄의 행위주체를 일본 형법은
■'타인을 위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규정하지만,
■우리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달리 규정한다.
그런데도 타인을 위한 사무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이중매도인의 등기협력의무(배신행위:공시력에 의한: 등기가 안 되었음으로 매도인 재산 )를 타인의 사무라고 하며 배임죄로 구성하는 것은 부당하다. (문제는 중도금을 넘어가면 이는 매수자에게 소유권이 있는지 매도인에게 있는지를 정의되어야 함 다만 해약을 할 수 없고 일단은 계약이행의 착수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임: 우리는 부동산제도에는 효력주위와 공시력에 참조)
결국 배임죄의 행위주체에 관한 판례와 학설은 우리 배임죄 규정이 아닌 독일이나 일본의 법률 또는 그 해석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될 뿐이다.
4. 임무위배행위에 관한 오해
판례나 학설은 배신설에 근거하여, 배임죄의 실행행위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법률의 규정이나 계약의 내용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신의칙상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행위를 임무위배행위라고 하면, 모든 채무불이행이 배임죄를 구성할 위험이 있다(계약불이행도 형법상의 범죄로 볼 수 있어 어떤 면에서는 사인간의 분쟁을 형법상의 문제로 이전될 가능성이 많음)
. 판례는 '계약의 내용과 그 이행의 정도, 그에 따른 계약의 구속력의 정도, 거래의 관행, 신임관계의 유형과 내용, 신뢰위반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이를 제한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판시만으로는 임무위배행위 해당 여부에 관한 일률적·정형적인 기준 제시는 불가능하므로, 배임죄 성립 여부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배임죄의 본질이 배신설에 기초하고 있다는 오해를 전제로 임무위배행위를 파악한 결과로 보인다.
5. 재산상의 이익의 취득에 관한 오해
독일 배임죄는 처음에는 신뢰를 배신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데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재산범죄로 발전하였을 뿐, '재산상 이익의 취득'에 관한 논의도 규정도 없다.
우리 배임죄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결과를 요구함으로써,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을 넘어 재산상 이익의 취득까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산범죄가 되었다.
따라서 임무위배행위로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더라도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다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위자료 즉 정신적인 손해는 하여 재산법)
그러니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요건은 배임죄의 성립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만 하더라도 우리 배임죄는 외국의 배임죄보다 매우 정비된 법률이다.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요건을 무시한다면 우리 배임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6. 위험범에 대한 오해
판례는, '배임죄에서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라 함은 총체적으로 보아 본인의 재산 상태에 손해를 가하는 경우를 말하고,
현실적인 손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여, 배임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위험범설은 형법 규정의 문언에 반할 뿐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는 독일과 달리 우리 형법은 배임미수에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위험범에 해당하는 사안은 미수범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형법은 손해뿐 아니라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결과까지 요구하고 있으므로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배임죄의 기수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험범설은 부실대출 사안의 경우 매우 부당한 결론으로 나타난다.
판례는 부실대출 사안에서 손해의 위험이 발생할 때 배임죄의 기수가 되고. 대출금 전액을 손해액으로 파악한다.
그 결과 대출 후 원금이나 이자를 일부 회수하여도 그것은 피해의 회복에 불과하고 그 돈은 손해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국민들의 법상식과 많은 괴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범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후 피해를 회복하여도 범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하는 판시 자체는 정당하다.
예컨대 절도죄가 성립한 후 도품을 반환받아도 절도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실대출 후 채무자의 대출금 변제는 절도죄에서 도품의 반환과 동일하지 않다.
절도죄에서는 절취로 인하여 그 즉시 범죄가 성립하지만,
배임죄에서는 임무위배행위를 하는 즉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배임죄는 범죄의 속성상 여러 단계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와 그 손해액을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과정과 시간적 간극을 무시한 채 임무위배행위 즉시 배임죄가 성립하고 대출액 전액을 손해로 파악하는 것은 배임죄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손해가 현실화되기 전이라도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는) 임무위배행위를 하면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확정하지도 않은 채) 그 즉시 손해가 발생하고, 그때 배임죄 기수에 이른다는 학설과 판례는 배임죄의 속성과 위험범의 의미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7. 결론
우리 배임죄는 독일 배임죄와 역사도 다르고 법률 규정도 다르다.
그 본질이 배신설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연혁적 근거도, 명시적 규정도 없다.
우리 배임죄의 본질이 배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오해하거나, 우리와 형법 규정이 다른 독일이나 일본의 배임죄 규정과 해석을 우리 배임죄 해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오해한 결과,
우리 배임죄는 이해하기 어렵고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범죄가 되고 말았다.
부디 우리 배임죄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를 거두고 우리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그대로 배임죄를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김신 전 대법관 (동아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