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와 형사처벌 및 민사책임
최근 몇년간 주택경기 활성화로 인해 아파트시행사업, 지역주택조합사업 등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사업부지 지주들의 알박기 행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부지 일부 필지를 매수한 후 시행사에 터무니없는 고가로 되파는 행위가 전형적인 알박기 행위이지만, 오랜기간 소유한 소유자가 시세의 수 배 내지 수 십배를 요구하는 행위도 알박기 행위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러한 알박기 행위자에 대해서는 주택법에 시세로 강제매수할 수 있는 매도청구권 규정을 두고 있지만, 3개월 이상 실질적인 매수협의요건 충족이 쉽지 않고, 지주가 대법원까지 상고하면 소유권이전이 안 되어 사실상 착공이 어려운 점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부당이득죄로 형사고소하여 처벌받게 하거나, 민사소송으로 과다지급한 매매대금의 반환을 구하는 방법은 어떨까.
대법원이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와 인정한 사례, 부당이득죄 규정의 위헌성,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 가부에 관하여 차례로 살펴본다.
■ 형법상 부당이득죄 성립 여부
o 부당이득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
대법원은 형법상 부당이득죄에 있어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고,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의 취득’이라 함은 단순히 시가와 이익과의 배율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개별적 사안에 있어서 일반인의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즉 피해자가 궁박한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 및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히 부당한 불균형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거래당사자의 신분과 상호 간의 관계,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의 정도, 계약의 체결을 둘러싼 협상과정 및 거래를 통한 피해자의 이익, 피해자가 그 거래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적절한 대안의 존재 여부, 피고인에게 피해자와 거래하여야 할 신의칙상 의무가 있는지 여부 등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사적 계약자유의 원칙을 고려하여 그 범죄의 성립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요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사업부지 중 일부의 매매와 관련된 이른바 ‘알박기’ 사건에서 부당이득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 그 범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는 상황을 미리 알고 그 사업부지 내의 부동산을 매수한 경우이거나 피해자에게 협조할 듯한 태도를 보여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후에 협조를 거부하는 경우 등과 같이, 피해자가 궁박한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원인을 제공하였거나 상당한 책임을 부담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개발사업 등이 추진되기 오래 전부터 사업부지 내의 부동산을 소유하여 온 피고인이 이를 매도하라는 피해자의 제안을 거부하다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큰 이득을 취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함부로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아파트 건축사업이 추진되기 수년 전부터 사업부지 내 일부 부동산을 소유하여 온 피고인이 사업자의 매도 제안을 거부하다가 인근 토지 시가의 40배가 넘는 대금을 받고 매도한 사안에서,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8도8577 판결).
♣ 시세의 10배, 45배에 매도한 것이 부당이득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대법원 판례들
토지소유자가 토지지분을 시가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매도함으로써 사회통념상 과도한 이득을 취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을 취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6. 9. 8. 선고 2006도3366 판결), 공동주택 및 판매시설 건축사업의 대상이 된 대지지분 등 부동산의 소유자가 사업자의 매도 제안을 거부하다가 통상 가격의 약 45배의 대금에 이를 매도한 사안에서,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도7823 판결)등이 있다.
o 부당이득죄가 성립한다고 본 사례
대법원은 ‘악의적인 알박기의 경우’ 즉 갑(甲)건설회사의 공동주택신축사업 계획을 미리 알고 있던 을(乙)이 사업부지 내의 토지소유자 병을 회유하여 갑과 맺은 토지매매 약정을 깨고 자신에게 이를 매도 및 이전등기하게 한 다음 이를 갑에게 재매도하면서 2배 이상의 매매대금과 양도소득세를 부담시킨 사안에서, 위 토지가 전체 사업부지 내에서 갖는 중요성, 을의 자력, 갑의 사업진행 정도 등을 고려할 때 부당이득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2612 판결).
대법원은 또한 토지매수인인 건설회사가 아파트 건설사업의 순조로운 진행과 막대한 은행융자금 이자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토지소유권을 시급히 확보해야 하는 처지여서 목적 토지에 관하여 명의자인 문중원들과 문중 사이의 소유권 분쟁에 관한 민사소송의 종료시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는 사정을 이용하여, 문중 대표자이자 목적 토지의 공유지분권자인 사람이 자기 지분에 대해 문중 명의 매매계약과 따로 별도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나머지 지분권자들의 3배 이상의 매매대금을 수령한 것은 건설회사의 궁박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서 부당이득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7. 12. 28. 선고 2007도6441 판결).
o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
대법원의 기본적인 태도는 ‘악의적인 알박기에 한’하여 아주 예외적으로만 부당이득죄의 성립
을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현실적으로 부당이득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o 부당이득죄 규정의 위헌성
알박기 행위의 처벌규정인 형법상 부당이득죄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거나, 계약자유의 원칙을 과잉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여부가 문제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보았다(헌법재판소 2006. 7. 27. 선고 2005헌바19 결정).
■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내지 부당이득반환책임
알박기 행위에 대하여 위와 같이 부당이득죄로 형사처벌하는 것과는 별개로, 부당하게 지급된 부분에 대하여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느냐 여부에 대해 살펴보자.
이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례상으로 민사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지나치게 과다한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처지를 이용하여 매도한 행위를 민사상 위법(違法)행위로 인정하고,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형식으로 판결이 되고 있다. 그런데 손해배상이 아닌 부당이득반환청구도 이론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으나, 매매계약이 전체로서 일체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일부분만을 분리하여 무효라고 보기는 곤란하기 때문에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이론상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태도로 보인다.
주의할 점은, 불법행위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형사상 부당이득죄의 성립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드시 부당이득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매수할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처지를 이용하여 시세보다 지나치게 과다한 금액으로 매도한 경우에는 그 자체가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손해금액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다.
판례를 보면, 먼저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가합41014호 판결은, 매매계약체결 당시 사건 부동산에 대한 시세를 27,260,000원으로 인정하면서 대금 90,000,000원에서 이를 초과한 금액인 62,740,000원을 손해로 인정한 반면, 이와 유사한 수원지방법원 2004가합4181호 판결에서는, 매매계약체결 당시 사건 부동산에 대한 시세를 3억4천여만 원으로 보면서도 사건 부동산 주변의 부동산 중 재개발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주민들에 대해서는 당초 협의가격의 3배 정도에 매수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시세 감정된 3억4천여만 원의 3배 정도를 적법한 가격으로 인정하여, 매매대금 20억 원에서 이를 초과한 약 9억 6천여만 원을 손해로 인정하여 이를 반환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부당이득반환을 인정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최근 필자가 수행한 사건에서도 법원은 지주가 당초 시세보다 3~5배를 더 받았다 하더라도 10년 이상 소유한 부동산이고, 시행사가 계약금이나 중도금,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 몇차례 재계약하면서 매매대금이 상승한 것인 점 등을 고려하여 시행사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