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전 대법관은 이날 한국법제연구원(원장 이익현)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개최한 제31회 입법정책포럼에서 "여행계약이 새로운 전형계약(채권법)으로 추가되는 등 여러차례 민법 개정이 있었지만 총칙이나 물권법, 채권법 등의 수정이 거의 없는 부분적 개정에 불과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2014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한양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우리 민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해방 이후 민법 제정 과정에 대한 고찰을 시작으로 우리 민법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양 전 대법관은 민법 제정 과정에 대해 "민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관련 법 소재를 정리한 뒤 개념화·체계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는 법학자들의 학문적 작업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이 같은 작업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독립국가임에도 일본법을 그대로 쓰는 것은 수치'라는 지적에 따라 민법 등의 입법 작업이 시작됐지만,
6·25전쟁 발발로 상당수 학자가 피랍되거나 관련 자료가 모두 소실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민법 제정 과정에 참여한 법학교수도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물권변동에 있어서의 형식주의 채택 등 선진적인 태도를 취한 부분도 있었던
■반면 임대차보증금 등 우리나라 고유의 법 제도에 대한 규율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일본의 영향이 많았지만 프랑스법계와 독일법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규율이 부족했다"며 ■"채권양도는 프랑스법, ■저당권 양도는 독일법계를 따르다보니 저당권부 채권의 양도는 어떻게 규율돼야 하는지 지금도 학설이 엇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종신정기금 제도와 같은 우리 실정에 불필요한 규정·제도도 충분히 제거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친족법과 상속법에서의 남녀 차별도 너무 심했다고 평가했다.
양 전 대법관은 우리 민법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해방 이후 법학 연구를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우리 법학은 일본의 우수한 법학자가 낸 교과서를 번역하는 이른바 '번역 법학'에 불과했고, 민법 연구 역시 '실제 법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 제시 여부'보다는 누가 교과서 시장을 석권하는지에만 관심을 쏟는 '교과서 패권주의'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교과서에서는 해답을 발견하기 어려운, 외국 학자들 업적에 의존해 우리나라 법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적 식민지'였다"며 "80년대 이후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교과서가 우리나라 고유의 민법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법 이론을 가져왔더라도 결국 우리나라의 법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면서 "■파생상품이나 ■리스(lease) 등 외국의 법 제도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우리 고유의 법 문제가 어떻게 일어나고 처리되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