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세계

허위 합의 효과

LBA 효성공인 2016. 7. 14. 18:10

    




        허위 합의 효과

    왜 우리는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고 하는가?

    우리는 사적인 자리에서 말다툼이나 논쟁을 하다가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확신할 때에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누가 옳다고 하는지······”라는 말을 한다.1) 물론 요즘 젊은이들이야 이 말을 별로 쓰지 않겠지만, 나이를 좀 먹은 사람들에겐 ‘길을 막고 물어본다’는 표현이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정말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제안을 한 사람의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줄까?

    혹 “내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남들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이런 착각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false-consensus effect라는 것을 내놓았다. 국내에선 ‘허위 합의 효과’, ‘합의 착각 효과’, ‘거짓 합치 효과’, ‘잘못된 합의 효과’, ‘거짓 동의 효과’, ‘허구적 일치성 효과’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데, 일단 여기선 ‘허위 합의 효과’로 부르기로 하자.

    허위 합의 효과는 실제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의견에 동의할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말한다. 심리학자 리 로스는 1977년 학생들에게 “샌드위치는 조스에서!”라고 쓰인 큼직한 간판을 샌드위치맨처럼 앞뒤에 걸치고 30분간 교정을 돌아다닐 수 있는지 묻는 ‘샌드위치 광고판 실험’을 했다. 조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의 품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으니, 그것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우습게 비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수락 여부에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이 수락할 것인지 예측하도록 요청한 결과, 광고판을 걸고 돌아다닐 수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도 약 60퍼센트가 수락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하지 않겠다고 답한 학생들은 평균 27퍼센트만 수락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어떤 이유로 실험을 수락하고 거부했든,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2)

    이 실험에선 자신과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아주 비정상적이다”라는 식으로 낙인찍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즉, 광고판을 걸치고 돌아다닐 용의가 있던 학생들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던 학생들을 가리켜 ‘유머 감각이 없는 경직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반면 거부했던 학생들은 반대편 학생들을 ‘바보 천치들’, ‘언제나 자신들을 중심에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3)

    1972년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뉴요커』 잡지의 영화평론가인 폴린 케일(Pauline Kael)은 이렇게 불평했다. “믿을 수 없어. 내 주위에는 그 사람을 찍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 케일처럼 선거가 끝나고 나서 쉽게 패배를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허위 합의 효과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4)

    앞에서 살펴본 다원적 무지와는 대조적인 이 효과는 정치적 급진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실패할 게 뻔한 데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어떤 이념이나 주장에 매달린다. 그렇게 믿어야 자긍심이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5)

    강미은은 허위 합의 효과를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 가치로 간주하고, 남들도 내 의견과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오류”로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행동을 보편화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는 의도가 포함된다. 이와 비슷한 ‘투사(projection)’ 현상도 있다. 투사는 자신의 의견이나 성향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는 경향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투사’하고 ‘잘못된 합의 효과’를 일으키면서 ‘집단사고’로 나아갈 때 위험은 크다. 특히 그런 방식의 의사 결정이 중요한 자리에 있는 엘리트 집단에서 일어난다면 그 위험은 더 크다.”6)

    한국에선 2009년 이후 국적 포기로 병역이 면제되는 사람이 해마다 3,000명이 넘는다. 2012년 10월 병무청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통계에 의하면 고위공직자 자녀가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자가 33명이었다고 한다. 국적을 포기한 이들 가운데 아버지가 정부기관의 장이나 국립대학 학장, 지자체의 장이거나 청와대 비서관도 있었으며, 고위공직자 자신이 국적 포기로 병역을 기피한 자도 2명이나 있었다. 이에 대해 제갈태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니 정작 본인들은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시치미를 떼고 뻔뻔스럽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객관적 검증 없이 자기 생각이 옳고 보편적 상식일 것이라고 믿는다.······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선 후보들을 비롯해 요즘 정치인의 화두는 반값 등록금이다. 그럼 나머지 등록금은 누가 대신 내는 것인가? 어떤 정치인도 자기 사재를 털어 대납하겠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결국, 등록금의 반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인데 유권자들이 언제 동의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자기 생각이 국민 의사와 같을 것이라는 오지랖 넓은 생각도 바로 ‘허구적 일치성 효과’다.”7)

    한경동은 명품의 모조품인 ‘짝퉁’을 팔거나 사는 것은 모두 불법인데도, 짝퉁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를 허위 합의 효과로 설명했다. “남도 나처럼 짝퉁을 살 거야(혹은 만들 거야)”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8)

    허연은 “요즈음 어느 자리에서나 와인 이야기로 너스레를 떠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들이 와인 이야기를 가지고 몇 시간을 떠드는 이유는 예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와인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허위 합의 효과 때문이다”고 주장했다.9)

    영화 〈파파로티〉(2012)에선 음악 교사 상진(한석규 분)이 낮엔 성악 공부를 하고 밤엔 깡패 노릇을 하는 ‘성악 천재’ 제자인 장호(이제훈 분)에게 깡패 짓을 그만둘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석규는 사람들이 깡패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며 “길을 막고 물어봐!”라고 외친다. 이때의 “길을 막고 물어봐”를 허위 합의 효과로 보긴 어렵지만, 부부싸움 등과 같은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에서 외쳐지는 “길을 막고 물어봐”는 허위 합의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