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ang-geon Lee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막내아들 이름은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그 모습이 독특하다. 앞머리는 매우 풍성한 반면, 뒷머리는 대머리다. 어깨에는 천사처럼 큼직한 날개가, 발뒤꿈치에는 자그마한 날개가 달려 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저울과 칼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모두 자신이 관장하는 영역이 있는데, 카이로스가 담당하는 것은 ‘기회(Opportunity)’다.
카이로스는 빨리 와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앞에 오는 짧은 순간에 머리카락을 움켜잡지 못하면, 카이로스는 어깨와 발뒤꿈치의 날개를 이용해 찰나에 사라진다. 지나간 후 잡으려 해봐도 뒷머리가 대머리라 헛손질을 할 뿐이다. 손에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신중함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상징한다.
기회에는 시간 개념이 담겨 있다. 하루, 이틀, 1년 등의 물리적 시간이 아닌 상황적∙주관적 시간이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는 개인의 상황과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한 사람에게 위기가 다른 이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투자 세계의 변곡점
상황적∙주관적 개념으로서의 기회라는 시간이 투자 세계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많지 않은 듯하다. 같은 시기에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의사결정을 했는가에 따라 수익률이나 재산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자산운용을 잘 하는 사람들은 늘 돈 버는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이라도 항상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어느 시점에 커다란 수익을 내는 변곡점이 존재했고, 그 변곡점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변곡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가 태동하면서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충격을 가하는 경우다. 인터넷 산업의 등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검색, 포털에서 시작해 최근의 게임산업, 모바일 비즈니스, SNS 등으로 인터넷 비즈니스가 진화하면서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부(富)를 축적한 이들이 많다. 이런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잘 이해하고 지배적 사업자로 성장할 기업들을 선별할 안목이 있는 투자자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산업이나 비즈니스로 인한 투자의 기회는 거품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막차를 탄 투자자들은 거품에 의해 희생양이 되기 일쑤다.
●또 하나는 커다란 충격(Shock)에 의한 변곡점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2000년대 초 신용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마 위기라는 단어의 뜻이 가장 실감나는 시기가 충격이 오는 때일 것이다.
주변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재테크 고수들은 주로 충격의 시기에 승자가 된 이들이 많다. 특히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급작스레 부를 축적한 이들이 많은데, 외환위기 충격과 인터넷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이 맞물린 시기였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에 부동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의 재산은 10년 사이에 몰라보게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필자 주변에 자산운용으로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말부터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약 10년 동안 보유 자산이 크게 증가했다.
이렇게 분석적으로 보면, 돈 버는 방법이 무척이나 쉬워 보인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때 될 성 부른 떡잎을 찾아내 투자하거나, 커다란 충격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자산이 급락하면 싸게 사들여 가격이 오른 후 되팔면 된다.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방법인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은 논리나 이성의 동물이 아니라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면 그 상승세가 계속될 것 같고, 그 열광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으면 큰 기회를 놓칠 것 같아 안달복달하는 존재다. 엄청난 열광이 결국 재앙으로 끝나야 그 열광의 감정은 이성으로 돌아오지만 그 이성은 초라하다. 반대로 충격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면 마치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고, 인내심이 바닥나면 시장에서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탈출한다. 다시 이성이 돌아오는 시기는 가격이 오른 후 자신의 초라한 투자 성적표를 보는 순간이다.
카이로스와 투자의 세계
필자가 주변에서 본 성공적인 투자가들이나 투자 역사에서 기록되는 위대한 투자가들은 대개 역행 투자가들이다. 그 역행의 방향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시대적으로 흐름을 먼저 읽거나 남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팔아 치울 때 사들이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기회는 다수가 있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의 세계와 다른 점이다. 사업의 세계에서는 다수가 있는 곳, 즉 소비자가 많은 곳으로 가야 기회가 많다.
카이로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의 머리카락을 잡기 위해서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 준비는 신중함과 날카로운 판단력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종자돈이 있어야 한다. 신중함과 판단력과 종자돈이 만나야 카이로스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시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자산을 주식과 채권 등에 분산투자해 놓고 시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단, 비중을 정해 놓아야 한다. 주가가 올라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 줄여서 채권 비중을 늘리고, 주가가 떨어져 채권 비중이 높아지면 주식 비중을 다시 높여야 한다. 기계적인 방법 같지만 이 기계적인 자산운용이 탐욕과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평소에 사고 싶은 주식이나 부동산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나 수익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과 달리 계속 오른다면, 그것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투자에서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이상건은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다. 이상건 상무는 오랜 기간 경제지 기자를 하면서 재테크 및 금융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낸 금융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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