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Ⅱ. 약관의 편입
1. 의사표시의 귀속
지능과 자율성이 없는 자동시스템은 정해진 알고리즘을 맹목적으로 따르므로 그것의 표시는 항상 사용자의 표시라고 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에서는 인공지능이 표시의 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계약상대방도 선택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인공지능은 법인격이 없으므로 대리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 대하여 법인격이 부여된다면('전자인' 제도) 대리 법리의 적용을 통해 의사표시의 귀속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한 입법이 있기까지 인공지능 사용자는 자신의 행동반경을 넓히기 위하여 인공지능을 사용한 것이므로 인공지능의 표시는 사용자에게 귀속된다고 입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에서 약관 편입 문제
당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을 통한 일반적인 계약체결에서는 눈에 잘 띄는 링크를 통해 사업자의 웹사이트에 있는 약관 및 중요 조항에 대한 설명문을 소비자가 다운로드(내려받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약관의 명시·사본 교부·설명의무가 이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은 비대면 거래이면서 계약당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업자가 약관법 제3조 제2항의 요건인 '계약을 체결할 때에 고객에게 약관의 내용을 분명하게 밝히고 중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은 약관의 편입 없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 한편으로 사업자는
●약관 편입에 의한 계약체결에 대한 정당한 이익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에서도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소비자 측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
소비자 측이 계약체결에 알렉사(Alexa)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용하는 경우 약관의 편입요건은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에서 소비자는 계약체결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관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약관의 명시·사본 교부·설명의무의 이행을 위하여 사업자가 계약체결 시에 소비자를 추가로 접촉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
약관법이 위 의무를 규정한 것은 소비자의 약관 내용에 대한 인지가능성을 보장하여 계약의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소비자는 늦어도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는 약관 내용에 대한 인지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계약체결에 인공지능이 사용되면 이것이 불가능하다.
소비자는 기껏해야 계약체결 후에 약관의 내용을 알 수 있으므로 사업자는 '계약을 체결할 때에' 소비자에게 약관의 내용을 밝혀야 한다는 약관법 제3조 제2항을 준수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약관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할 위험은 그 사용자인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 소비자가 약관을 읽지 않거나 피상적으로만 읽더라도 약관이 계약에 편입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인공지능이 사용된 계약체결에서는
인공지능이 약관과 약관의 중요 내용에 대한 설명문을 내려받기하여 저장할 수 있으면 소비자의 인지가능성이 긍정되고 동시에 명시·사본 교부·설명의무가 모두 이행되며 약관의 계약에의 편입에 관한 동의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Ⅲ. 정보제공의무
1.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의 정보제공의 상대방
현행법상 인공지능의 행위는 모두 그 사용자인 소비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므로 사업자는 소비자는 물론 소비자의 인공지능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무방할 것이다.
2. 정보제공의무 위반의 효과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재화나 용역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통신판매업자에 해당하므로
계약체결 전에 다양한 '거래조건'에 관한 정보와 사업자의 '신원'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계약에서 사업자의 계약체결 전 정보제공의무의 이행은 쉽지 않다.
예컨대 알렉사에 의한 주문절차는 소비자가 대금지급을 확인하는 정도로 간략히 형성되어 있어 전자상거래법이 요구하는 정보제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
알렉사에는 디스플레이가 없어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시할 수도 없다.
그에 따라 아마존(Amazon)은 정보제공의무 위반에 대한 전자상거래법에 따른 행정처분이나 형사적 제재(제31조 이하, 제43조, 제45조)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정보제공의무를 불이행하더라도 사법(私法)적으로는 이미 성립한 계약의 유효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소비자 철회권의 기산에 영향을 준다(전자상거래법 제17조 제2항).
결국 사업자의 시각에서 정보제공의무 불이행의 민사법적 효과는 철회권의 행사기간을 사실상 연장하여 이미 성립한 통신판매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3. 정보제공의무의 구체적 이행
소비자가 거래에 알렉사를 사용하는 경우 아마존은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소비자의 알렉사와 접촉하게 된다.
문제는 이 경우에 사업자가 계약체결 전 정보제공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사업자가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정보제공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소비자는 의사결정에 대한 피로에서 벗어나고자 계약체결을 그의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공지능은 단지 계약의 성사 여부만을 소비자에게 알린다.
따라서 사업자가 계약체결 전에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보제공의무의 불이행에 대하여는 제재가 따를 수 있다.
그러한 제재는 사업자의 의무이행을 불가능하게 한 측은 소비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불합리하다. 그러면 이러한 불합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사업자가 제공하는 정보의 인지를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인지 결여를 그의 부담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자의 부담으로 할 것인지는 누가 이에 대한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따라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기술 발전 상황, 인공지능의 보급 정도 및 의무적 정보의 표준화와 그것의 보급 정도이다. 즉 인공지능이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고 기술적 표준이 부족한 경우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법률이 요구하는 정보를 완벽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소비자의 정보 인지가능성의 결여는 소비자의 위험영역에 속한다. 사업자는 적어도 현재에는 소비자의 사용하는 인공지능이 자연어로 된 텍스트를 해석할 수 없음을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정보가 소비자의 인공지능에게 제공되어 내려받기를 통해 저장될 수 있다면 정보제공의무의 이행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널리 보급되고 법률상의 의무에 대한 표준이 개발된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통신판매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사업자는 법률상의 정보를 인공지능이 처리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사업자는 정보제공의무를 불이행한 것이 된다.
Ⅳ. 요약 및 전망
(1) 약관의 계약편입 : 소비자는 원칙적으로 그의 인공지능에게 약관 및 중요 내용에 관한 설명문이 내려받기 및 저장 가능성과 함께 제공된 때에 약관의 내용에 대한 인지가능성을 갖는다.
소비자의 인공지능이 약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위험은 소비자가 부담한다.
(2) 정보제공의무 : 소비자가 그의 업무처리를 위하여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 정보가 소비자의 인공지능에게 제공되어 내려받기를 통해 저장될 수 있다면 정보제공의무의 이행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3) 전망 : 계약체결을 위한 인공지능의 사용은 인간의 의사(意思)와의 접점이 너무 작아 전통적 법률행위론 내지 의사표시이론은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그에 따라 인공지능을 사용한 계약체결이 안정적인 법적 기초 위에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범의 정립에 대한 요청이 커질 것이다. 이때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부여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김진우 교수(한국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