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물건” 지주택 조합원 울리는 분양대행사 막무가내 ‘호객’
정부·국회, 주택법 개정에 ‘상세 설명’ 의무화… 공전 국회에 제자리
A씨는 최근 유주택자의 꿈을 안고 뉴스에 나온 서울 중구의 한 분양 사무실을 찾았다. 바로 지역주택조합 사무실이었다. 건설사 분양보다 가격은 저렴한데 입지는 서울 중심의 청계천 인근이었고 지하철과도 가까웠다. 분양 사무실 직원은 토지를 95% 확보했고 조합설립도 인가받았다고 설명했다. 모든 조건이 혹할 만했다.
이어 이 직원은 “좋은 물건 다 나갔는데 하나가 딱 남았다”면서 추가 설명이나 계약서도 없이 “동호수 지정하게 통장 달라. 300만원 빨리 입금해야 된다”고 독촉했다. 좋다는 물건을 미리 ‘찜’해 두라는 것이었다.
A씨가 “가계약인 거냐, 청약 아니냐”고 묻자 직원은 “동호수 지정이라 계약도 아니고 나중에 청약 안 할 거면 300만원 돌려주는 것”이라고 재차 독촉했다.
A씨가 모바일 뱅킹으로 300만원을 입금한 뒤에야 이 직원은 입금증과 함께 동호수 지정 계약서라는 서류를 내밀었다. 동호수 지정을 취소할 경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A씨는 10일 기자에게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며 “마치 쇼핑 호스트의 ‘마감 임박’ 재촉에 홀려 물건을 주문하는 홈쇼핑 같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일명 지주택이라 불리는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사업이 예정된 일정보다 길어지는 경우는 다반사고, 추가 공사비가 발생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공사가 지연된다고 해도 탈퇴는 할 수 없었다.
<자료 : 박홍근 의원실>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 커지자 정부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지난 3월 박홍근 의원실은 국토부의 개선안을 종합해 ‘주택법(지역주택조합 부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박 의원실은 “무주택 서민 등의 내 집 마련 지원이라는 제도 취지에 맞도록 주택조합제도의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합을 대신해 분양대행을 맡고 있는 대행사에 대해 책임을 묻는 부분이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그동안 분양대행사들은 거짓·과장 광고 등을 통해 무리하게 조합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A씨처럼 분양대행사는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좋다’는 말만으로 호객했고 이 말만 믿고 조합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거다.
서울의 한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 모집 건별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다 보니 무리하게 조합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대행사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고 책임은 회피했다.
결국 A씨는 불안한 마음에 아파트가 들어설 땅을 찾은 뒤 동호수 지정을 취소했다. 시공사는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해당 부지에서는 여전히 상가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3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분양사무실을 다시 찾았지만 대행사 직원들은 지정 취소를 하려면 “인감증명서와 인감 도장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A씨는 “입금 당시 그런 얘기 없었다”고 항의했지만 “300만원 안 받을 거냐”는 으름장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류를 내야 했다.
그나마 A씨는 나은 편이었다. 분양 계약을 맺고 지주택 조합원으로 참여한 뒤 피해를 입었다며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 중에서는 대행사 직원들에게 속았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대행사 직원들 말과는 달리 시공사가 정해지지 않아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벌써 10년째 못 들어가고 있다”거나 “공사비는 변동없다더니 시공사가 선정된 뒤 계속 올라 2억원이 추가됐다”는 식의 글들이었다.
박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에서도 분양 대행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조합원 모집주체가 해당 주택조합의 사업 개요, 조합원 자격기준, 분담금 등 각종 비용, 토지확보현황 등에 관한 사항을 조합가입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그동안에는 조합원 모집 공고에 많은 정보를 담지 않아 조합원 자격 기준, 분담금 등 각종 비용, 토지 확보 비용 등에 관한 사항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있었다. 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납입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특히 조합 가입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상담을 받는 상황에서도 조합원 자격기준이나 분담금 등 비용에 관한 사항은 예민한 만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설명을 충분히 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계약자가 설명 내용을 이해했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확인받고 이를 계약자에게 교부하도록 했다. 사본은 국토부령으로 정하는 기간 동안 보존하도록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주택에 가입한 뒤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정부도 인지하고 올 초부터 개선안을 마련해 왔다”면서 “분양대행사가 계약하려는 사람들에게 충실히 설명하는 것을 의무화하기 위해 국회와 함께 개정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