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동료 변호사로부터 청취한 실화이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로 유기된 아동이 그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아동복지법 제45조 제2항)의 보호를 받고 있던 중 취학연령이 임박하였다.
위 보정명령은, 위 법률(이하 ‘시설미성년후견법’으로 약칭)이 민법의 특별법이기 때문에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민법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해석은 미성년후견에 관한 법리오해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법리오해의 근저에는 ‘시설미성년후견법’ 자체의 당착이 있다.
II. ‘시설미성년후견법’의 해석론과 입법취지: 2013년 6월 30일 이전의 구 후견법을 중심으로
1. 문제의 소재
미상불 ‘시설미성년후견법’의 문리해석에 의하면
,
소정의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에 관해서는 당연히 그 시설의 장 등이 법정후견인(고아의 경우) 또는 선임후견인(기아의 경우)으로 취임하는 것처럼, 따라서 위 법률이 마치 민법의 특별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설미성년후견법’은 원래 2013년 6월 30일 이전에 시행되던 구 후견법을 전제로 제정된 것이므로, 그 해석론 역시 우선 구 민법(2011. 3. 7. 법률 제1042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민법’으로 약칭)에 비추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시설미성년후견법’의 해석론
‘시설미성년후견법’은 해당 미성년자의 ‘부양의무자’(즉, 미성년후견인)가 엄존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부양의무자 확인 공고 제도).
법문은 ‘부양의무자’를 ‘후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지정후견인(구 민법 제931조. 현행법도 동일)이든 법정후견인(구 민법 제932조. 그 순위는 구 민법 제935조가 규정)이든 미성년후견의 개시로써 법률상 당연히 취임하므로,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미 미성년후견인’이지 ‘미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설미성년후견법’에 의하여 취임하는 후견인은, 문언상의 표현에 불구하고 그 법적 성질은 원칙적으로 후견인이 아니라 후견인임무대행자라고 보아야 한다.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 취임에 불구하고 ‘부양의무자’가 후견인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을 임무대행자로 보지 않는다면, 미성년후견인은 한 명만 있을 수 있다는 원칙(구 민법 제930조. 현행 민법 제930조 제1항)에도 어긋난다. ‘
부양의무자’가 피후견인을 인수하여 시설미성년법 소정의 ‘후견인’의 임무가 종료되더라도 그 ‘후견인’의 지위가 법률상 당연히 상실되지 않고 별도의 지정(허가)취소가 있어야 비로소 상실되는 것 역시, 그 ‘후견인’이 실은 임무대행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 중에 지정후견인과 법정후견인이 정말로 없는 자도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의 취임으로 인해 후견인선임 심판청구가 불가능하게 될 하등의 법적 근거가 없으며, 후견인의 선임 역시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의 임무종료 사유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법정책으로도,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을 통상의 후견인으로 보는 해석은 기괴한 결과를 낳을 것이었다.
가령,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의 4촌인 성년자가 자신을 후견인으로 선임해 달라고 청구했을 경우를 상정해 보라.
단지 해당 미성년자가 보호시설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후견인으로 선임함을 금지하기에 필요충분한 이유일까?
게다가 국·공립 보호시설의 경우 ‘시설미성년후견법’이 정녕 민법의 특별법이라면 후견인을 결코 시설의 장외의 자로는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 되는데, 이 또한 기이한 결과이다.
요컨대, 선임후견인이라는 명백히 가능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이상, 설령 후견인(지정, 법정)이 아예 없는 경우에도 ‘시설미성년후견법’ 소정의 ‘후견인’의 법적 성질은 임시후견인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시설미성년후견법’은 민법의 특별법이 아니다.
어떠한 미성년자가 ‘보호시설에 있는 고아 또는 기아’이든 아니든 간에 후견이 개시된 이상 민법에 따라 후견인(지정, 법정, 선임)이 취임한다는 이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3. ‘시설미성년후견법’의 입법취지
결국 ‘시설미성년후견법’의 입법취지는 보호시설 관계자로 하여금 후견임무대행자{미성년후견인(지정, 법정)이 취임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임시후견인으로서{미성년후견인(지정, 법정)이 없는 경우} 취임하도록 하여, 후견인(지정, 법정, 선임)이 그 시설에 있는 미성년자를 인수하기 전까지 그 미성년자가 후견을 받을 수 있도록(특히 법정대리인의 공백을 피하도록) 해주는 데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III. ‘시설미성년후견법’의 당착: 2013년 7월 1일 이후의 현행 후견법 하에서
문제는 상술한 입법취지가 현행 민법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유언으로 후견인이 지정된 경우를 논외로 하면, 현행법에서는 미성년후견인이 취임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 즉, 누가 미성년후견인인지 명백하거나(예: 친권상실 선고와 동시에 미성년후견인 선임) 미성년후견인 자체가 아직 없을 뿐이다(예: 친권자가 모두 유언 없이 사망한 경우). 현행 민법은 구 민법의 법정후견인 제도를 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견인이 누구인지 명백한 경우 후견인임무대행자를 둘 필요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후견인이 없는데 후견인선임은 제쳐두고 후견인임무대행자를 선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당착이다.
둘째, 구법에서는 지정후견인이나 법정후견인이 정말로 없는 경우라도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미성년후견인 선임청구를 할 수는 없다는 난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이 난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원론적으로는 가정법원이 직권으로 미성년후견인을 선임하는 것마저 가능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당착은 현행 ‘시설미성년후견법’ 자체에도 드러나 있다.
‘부양의무자’의 근거가 되는 ‘민법 제932조’는 -현행 민법의 시행에 불구하고 ‘시설미성년후견법’의 해당 문언을 개정하지 않았거니와- 구 민법과 현행 민법에서 의미가 판이하다.
이는 구법에서는 법정후견인을 규정한 조문이었지만, 현행법에서는 선임후견인을 규정한 조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법 조문의 문리해석대로라면, 부양의무자 확인 공고란, 있지도 않은 선임후견인을 대상으로 공고를 하는 것에 다름 아닌데, 이는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지면관계상 상론은 할 수 없으나, 현행 아동복지법(특히 ‘민법 제932조 및 제935조’를 운위한 제20조 제1항)에도 이와 유사한 입법의 착오가 있음을 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미성년후견법’의 현행법상의 존재 의의를 굳이 찾는다면, 국공립 보호시설에 있는 고아의 경우에 법률상 당연한 임시후견인을 둠으로써 법정대리인이 없는 기간을 제거한다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그 실익이 미미하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사립 보호시설에 있는 고아 또는 보호시설에 있는 기아와 굳이 그러한 차별을 둘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더욱이, 현행법에서도 가정법원이 적절히 직권발동을 하는 운용의 묘를 기한다면, 법정대리인이 없는 기간을 제거할 수 있는 터이다.
IV. 결론
‘시설미성년후견법’은 구 민법의 미성년후견 제도의 맹점(누가 후견인인지 알기 어려운 법정후견인 제도와 직무상 당사자를 청구권자에서 배제한 선임후견인 제도)을 보완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행 민법은 법정후견인 제도 자체를 폐지함과 동시에 직무상 당사자도 미성년후견인 선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예의 맹점을 발본색원하였다.
결국, 현행법에서는 보호시설에 있는 기아나 고아를 위해서도 민법에 따라 미성년후견인을 선임해 주면(또한, 민사절차상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소송법상의 특별대리인을 선임해 주면) 그만이다.
따라서 ‘시설미성년후견법’은 시대착오적인 법률로서 이제는 폐지함이 상당하다{기존에 지정(허가)을 받은 자들을 위한 경과조치 규정을 둠을 별론}. 본고의 모두에서 언급한 보정명령에서도 드러난바, 당초 아동의 복리를 위해 제정된 이 법률이 도리어 아동의 복리를 저해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이 법률이 왜 더 이상 존치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
임대윤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