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제도의 불비 보완해 '비범죄화' 해야
I. ‘민사의 형사화’ 문제
형사법이론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 중의 하나로 소위 ‘민사의 형사화’를 들 수 있다.
민사의 형사화란 민사문제로 해결해야 할 사건을 형사문제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민사의 형사화는 민사문제에 국가가 형벌권을 동원하게 되고, 과도한 국가형벌권의 동원은 필연적으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국민들이 생겨나게 만든다.
민사의 형사화의 대표적인 예로 사기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채무불이행의 경우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받기 어렵고, 설사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소송도 채권자 자신이 수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채권자는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한다. 그를 구속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구속 및 형사절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을 일부라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채무자는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등에게 사정사정하여 마련한 돈으로 채권자와 합의를 시도한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판례는 ‘변제의 의사 또는 능력이 없이’ 돈을 차용하거나 물품을 구매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하여 사기죄를 매우 넓게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도5265 판결 등).
심지어 자신의 신용카드를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사용해 오다가 대금결제를 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기죄를 인정하기도 한다(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6도282 판결). 형사사법기관을 신용카드업자의 수금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부당한 판례로 인해 실무에서는 ‘결과적 사기범’이라는 용어마저 생겨났다고 한다.
결과적 사기범이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면 무조건 사기범이 된다고 하는 시니컬한 용어이다.
한 때 우리나라의 고소율이 일본의 20~30배가 되니, 국민들이 고소하는 습성을 줄여야 한다고 한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소율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형사사법기관이 만든 민사의 형사화 현상 때문이지, 한국사람들이 고소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서가 아니다.
II. 부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
판례는 부동산을 매도하고 제1차 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받은 후 그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고 중도금까지 받은 경우에는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민사의 형사화’ 현상을 초래한다.
매매라고 하는 가장 전형적인 민사거래에서 매수인이 부동산을 온전히 취득하지 못한다고 하여 바로 범죄가 성립한다고 하는 것은 성급하다.
거래 당사자 간의 신뢰를 기초로 이루어지는 민사거래에서도 신뢰를 배신한 경우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매라는 민사거래에서도 기망이나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의 행사 등이 있었다면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이중매매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선 민사문제로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 이중매매를 형사처벌하기 위해 판례는 신뢰위반을 핵심요소로 하는 배임죄에 의지한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위배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범죄이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신뢰관계에 의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다. 이와 같이 배임죄는 기망이나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의 행사 등이 없어도 신뢰위반만을 이유로 성립할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판례는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하기 위해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의 개념도 확대해석하였다.
오래 전 판례는 이중매매자를 별 근거 없이 타인의 사무처리자라고 하였다(대법원 1966. 12. 20. 선고 66도1543 등).
이것이 논리의 비약이라는 의심이 들었는지, 이후 판례에서는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타인의 재산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경우’라고 하였다(대법원 1970. 2. 10. 선고 69도2021 판결 외 다수판결).
여기에서 ‘타인의 재산 보전행위에 협력하는 경우’란 주로 부동산 이중매매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사무에 ‘협력하는’ 사무는 논리상 ‘자기의 사무’이지 타인의 사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아직은 계약과 중도금을 지불하였다하여 재산권이 넘어간 것은 아니며 청산금을 청산하여야 실제적인 물권변동이 이루어짐)
다른 문제도 있다.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 또는 제3자의 재산상 이익의 취득과
■본인에 대한 재산상 손해발생이 있어야 한다. 재산상 이익의 취득과 손해의 발생은 행위 전후의 재산상태를 비교하여 판단한다.
행위 이전의 재산가액이 행위 이후의 재산가액보다 많으면 재산상 이익이, 적으면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재산의 가액은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고 행위자 또는 제3자나 본인의 주관적 감정 등은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매도인이 부동산을 이중매매 하였다고 하더라도 제1차 매수인에게 정당한 배상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중매매로 인해 매도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제1차 매수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예컨대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 1천만원과 중도금 4천만원 합계 5천만원을 받았지만, 매수인에게 위약금 1천만원과 그 동안의 계약 진행에 따른 손해배상 등 6천만원+α의 금액을 제공하면서 부동산을 이중매매하였다면, 제1차 매수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한다면 이중매매하지 않고 등기협력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매도인의 임무위배행위는 있는 것이므로 적어도 배임죄의 장애미수 내지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까지 민사문제로 해결하지 않고 배임죄를 인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III. 올바른 해결방안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부동산 이중매매에서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대법원이 동산의 이중양도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거나(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 대물변제예약된 부동산의 이중매매(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종래의 입장을 변경하고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은 위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문제점을 의식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법원이 부동산 이중매매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임죄 성립을 부정하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필자는 어느 단체의 대표로서 그 단체가 모금한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해본 적이 있다.
당시 시가 1억원 정도였는데, 매도인은 노부부였다. 계약 시부터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받을 때까지 석 달 정도의 기간이 걸렸는데, 계약 시 계약금 1천만원, 한 달 후 제1차 중도금 3천만원, 두 달 후 제2차 중도금 3천만원, 석 달 후 잔금 3천만원으로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3개월 동안 매도인에게 지급한 매매대금을 담보할 방법이 없었다.
매도인에게 중도금을 지급한 이후 저당권을 설정하거나 소유권이전의 가등기를 하자고 제안하였지만, 노부부는 혹시 자신의 부동산이 잘못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래를 못하겠다고까지 하였다. 필자 개인의 일이 아니라 단체의 일이었기에 계약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받기까지 3개월은 그야말로 불안의 연속이었다.
아파트나 단독주택 등의 경우 대부분의 매수인은 자신의 전 재산과 부채까지 동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계약 시부터 소유권 이전등기를 받기까지 지급한 거래대금을 담보할 방법이 없는 위험한 거래를 하게 된다.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해온 것은 이러한 민사제도의 불비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매수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받을 때까지 지급한 거래대금을 담보해줄 민사제도를 시급히 마련하고, 부동산 이중매매는 비범죄화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에스크루제도를 육성 발전시켜야 함)
오영근 교수(한양대 로스쿨)
배임죄처벌은 '민사의 형사화' 현상 초래
Ⅰ. 법원의 판결내용
항소심은 원심(2015. 5. 20. 2014고단821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판결)에서 인정된 피고인의 배임죄에 대한 피고인의 항소를 다음과 같은 법리로 기각하였다( 2015. 7. 23. 2015노1112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 판결).
“배임죄에서 손해를 가한 때란 현실적으로 실해를 가한 경우뿐만 아니라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하게 할 경우도 포함하는 것이고, 부동산의 매도인이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 등을 경료하기 이전에 제3자로부터 금원을 차용하고 그 담보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해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그 근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되는 피담보채무 상당액의 손해를 가한 것이다(대법원 1998. 2. 10. 선고 97도2919 판결 참조).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2012. 10. 30. 피해자 방□□과 사이에 경남 고성군 고성읍 월평리 토지 중 답 660㎡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지급받았음에도 2013년 2월 25일경 정◇◇으로부터 3000만원을 차용하면서 월평리 토지에 채권최고액 3900만원의 근저당권을,
2013년 3월 8일경 김△△로부터 5000만원을 차용하면서 월평리 토지에 채권최고액 5600만원의 근저당권을 각 설정하여 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피해액은 피고인이 월평리 토지에 설정하여준 근저당권들의 채권최고액 합계 9500만원이다.”
Ⅱ. 문제제기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은 다음과 같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즉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따라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위배 행위’를 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이어야 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문언은 언제나 명확하다고만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문언에 관해 해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만 형법의 해석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틀에서 허용될 수 있을 뿐이다.
제1심과 항소심은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배임죄의 타인사무를 행하는 행위주체로 간주하여 그에게 배임죄(형법 제355조 제2항)의 성립요건을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였다.
즉 ① 피해자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피고인을 ‘타인의 사무처리자로 인정하고’,
② 중도금을 받고서도 피고인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행위에 대해 피고인은 ‘타인사무에 관한 임무위배를 범’한 것이며,
③ 그로 인해 피고인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④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등기이전에 필요한 잔금을 완납 받지 못하고 중도금을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위한 등기이전협력의무자로 볼 수 있는지는
■부동산 물권변동에 있어서
※의사주의가 아닌
※형식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법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한 부동산의 매매에서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기만 하면 해당 부동산의 명의자가 그 부동산을 명의자 자신을 위해 담보로 제공할 경우 그는 배임죄에서 명시한 ‘타인의 사무 처리를 위한 임무’처리자에 해당될 수 있는지,
피해자로부터 잔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 자신의 부동산에 대한 은행담보로 돈을 빌렸을 때 피해자에게 경제적 손해를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하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관하여 판례의 배임죄 인정 법리가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검토해 본다.
Ⅲ. 항소심의 법리에 대한 비판
1. 항소심 법리
(1) 배임죄의 행위주체와 임무위배행위
종래 판례는 부동산의 이중매매나 이중처분이 배임죄가 된다고 보았고, 학설도 강구진의 주장 이래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의 전형으로 보았다.
그 근거로 배임죄의 행위주체를 계약금과 중도금을 인수한 매도인의 등기협력의무에서 찾았고,
■매도인의 이런 등기협력의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되어 배임죄의 행위주체로서 손색이 없으며,
■등기협력의무를 위반하여 제3자에게 부동산을 매도하여 이익을 취득하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종례의 대법원 판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입장으로
◎“매매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중도금을 수수하는 등으로 계약의 이행이 진행되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그 계약의 내용에 좇은 채무의 이행은 채무자로서의
■자기 사무의 처리라는 측면과 아울러
■상대방의 재산보전에 협력하는 타인 사무의 처리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 그 채무자는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게 된다(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 참조)”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의무의 이행을 통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재산에 관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하게 하기 전에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 상대방의 재산 취득 혹은 보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정당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형적인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 참조)”고 보았다.
제1심과 항소심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의 터전 위에서 법리를 세웠다. 그래서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피고인도 해당 사건의 배임죄의 주체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게 되면 임무위배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2) 손해의 개념
손해에 대한 개념 역시 제1심과 항소심은 대법원의 종래 입장처럼 피해자에게 발생하는 ‘손해’란 현실적 손해뿐만 아니라 ‘잠재적 손해’인 ‘위험성이 있는 손해’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비판
(1)에 관한 항소심의 법리비판
배임죄의 행위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고, 그가 처리하는 사무는 법문에 명시된 바와 같이 ‘타인의 사무’여야 한다.
타인의 사무라는 것은 ‘타인을 위한 사무’와는 구별된다.
타인을 위한 사무 중에는 ‘타인을 위한 자신의 사무’도 있을 수 있고, 혹은 ‘타인을 위한 타인의 사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을 위한 사무라도 그 사무의 본질이 행위자 ‘자신의 사무’에 속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무일 뿐이지 타인의 사무일 수 없다( 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그럼에도 학설과 판례의 대부분은 ‘타인의 사무’를 ‘타인을 위한 사무’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배신설을 취하기 때문이다. 배신설은 “형법이 배임죄를 횡령죄와 동일한 장에서 규정하고 있고, 또한 구성요건을 ‘권한을 남용하여’로 하지 않고, ‘임무에 위배하여’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배신설이 형법상 문언해석에 합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무의 위배’를 ‘임무의 배신’으로 새길 수 있고, 배임죄의 행위주체는 법령이나 계약에 의해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이행될 기대행위의 불이행한, 즉 이행이 기대된 행위에 대한 배신을 하는 자로 파악하게 된다.
배임죄의 본질을 배신설에 입각하게 되면,
대내관계에 있는 채무불이행은 신의칙상 기대되는 채무이행행위를 배신한 것이어서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이므로 배임죄를 구성하게 된다.
채무불이행은 민사상 계약불이행에 불과한 행위임에도 배임죄로 처벌한다면, 민사상의 문제를 형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배신설을 취하는 견해는 적용범위를 다시금 제한하려는 노력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보다는 채무불이행은 타인을 위한 사무이긴 하지만, 그 사무는 자신의 사무이기 때문에 배임죄에 해당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이다.
(2)에 관한 비판
‘손해발생’과 ‘손해발생의 위험’은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 사회가 신용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경제거래상 위험은 항상 수반되고 있다는 점에서 손해발생과 손해발생의 위험을 동일시한다면, 거래의 실제와 부합하지 않고, 배임죄의 성립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손해발생과 손해발생의 위험을 동일시하는 판례의 밑바탕에는 손해발생의 위험을 손해발생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배임행위를 한 후에 손해를 보전하는 경우에 있어서 기수범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사고가 깔려있다. 이 같은 부당한 결과의 초래는 손해의 개념을 법률적 평가에 따를 경우에 가능하다.
그러나 판례는 경제적 평가에 의해 재산상 손해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손해의 개념을 손해발생의 위험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손해의 발생을 손해발생의 위험초래와 결코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손해발생의 위험이 손해발생과 동등한 정도의 위험을 초래하였다면, 그것은 손해발생으로 파악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배임죄는 어디까지나 재산범죄이며, 임무위배행위를 통하여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게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있으므로, 배임행위자가 그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손해를 발생케 했거나 현실적 손해와 동일시할 정도로 평가되는 손해의 구체적인 위험을 야기하였다면 거래관행에서 손해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Ⅳ. 결론
제1심과 항소심의 배임죄 인정은 잘못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피고인은 결코 피해자의 사무처리자일 수 없기 때문에 배임죄의 행위주체가 될 수 없다.
최근 대법원의 동향을 살펴보면 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고,
그 이후 부동산의 경우에도 비록 대물변제예약 사안이긴 하지만 부동산 이중처분자가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전원합의체로 인정했다. 또한 형법상 배임죄는 미수범을 처벌하고 있고(형법 제359조),
‘타인에게 손해를 가해야’ 기수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부동산 이중처분행위는 아직 피해자에게 손해를 발생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본 사안의 경우 대법원의 부동산의 이중처분 혹은 이중매매는 더 이상 배임죄로 성립될 수 없을 거라고 예상되며, 또한 그런 입장이 반드시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허일태 명예교수 (동아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