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청 재량행위의 판단여지
-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3두21120 -
Ⅰ. 사실관계 및 소송경과
원고는 서울에서 OOO안과를 운영하면서 눈미백수술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었다.
피고 보건복지부장관은 2010년 3월 23일 눈미백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민원제기 등을 함에 따라 그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안과, 성형외과, 연구방법론 전문가 등 총 7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술의 안정성·유효성을 평가하도록 하고, 2011년 2월 25일 위 평가결과를 토대로 최종심의를 하였다.
피고 보건복지부장관은 2011년 3월 3일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눈미백수술이 안정성이 미흡한 의료기술이고,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원고에게 눈미백수술의 중단을 명하였다.
원고는
●서울행정법원에 중단명령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기각판결(서울행정법원 2012. 2. 22, 2011구합17233)을 받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승소판결을 받았다(서울고법 2013. 8. 30, 2012누9213).
이에 대하여 피고는 상고하였으며,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대법원 2016. 1. 28, 2013두21120).
Ⅱ. 대법원 판결의 요지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2항, 제59조 제1항의 문언과 체제, 형식,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의료법의 목적 등을 종합하면,
●불확정개념으로 규정되어 있는 의료법 제59조 제1항에서 정한 지도와 명령의 요건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행정청이 어떠한 종류와 내용의 지도나 명령을 할 것인지의 판단에 관해서는 행정청에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다.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나 신의료기술의 시술로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에 관한 판단은 고도의 의료·보건상의 전문성을 요하므로,
행정청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목적에서 의료법 등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에 대하여 전문적인 판단을 하였다면,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판단이 객관적으로 불합리하거나 부당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청이 전문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재량권의 행사로서 한 처분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거나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는 등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 아닌 이상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Ⅲ. 평석
의료법 제53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54조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에 관한 ■평가(재량행위)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의료법 제59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법률요건(기속행위)에 “안전성·유효성” 및 “국민건강에 중대한 위해”라는 불확정법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 행정청의 ‘재량’이 인정되는지 또는
●이와 구별되는 개념인 ‘판단여지’가 인정되는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특히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행정재량은 법률효과에 가능규정이 사용된 경우뿐만 아니라(효과재량),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도 인정되었다(요건재량).
그러나 ■전후(戰後) 실질적 법치국가의 구축과정에서 판례와 학설은 행정재량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는 특히 법률요건 부분에서 행정재량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재량이란
◆법률효과 부분에 가능규정을 두어 2개 이상의 동가치적인 행위사이에 선택권을 부여한 경우에 주어지며,(판단의 여지)
◆법률요건 부분에서 사용되는 불확정법개념은 하나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만을 허용하고, 이것은 완전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관철되었다.
법률요건에 부여되는 요건재량은 불확정법개념의 구체화 과정이며 이는 단순한 인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식의 영역(법률요건:기속행위)에서는 법률효과의 영역과는 달리 어떠한 선택이 있을 수 없으며, 단지 하나의 올바른 판단만이 존재한다.
불확정법개념(판단의 여지가 없음)의 적용에 있어서 법적·사실적 문제는 그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기술분야의 평균적이고 지배적인 견해에 따라 충분하게 특정화된 내용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행정청에게 판단여지가 부여될 수 있는바, 이는 행정재량과 상이한 논리적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여지이론은 전후 독일의 학설과 판례에 의하여 발전 되었는바(이에 대하여 상세히는 정하중, 행정법의 이론과 실제, 191면 이하), 오늘날 다수설인 판단수권설에 따르면 행정청의 판단여지는 불확정법개념의 포섭과정에서 주어진다. 확인된 사실관계가 법률요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는 인식작용으로서 하나의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 ‘안정성·유효성의 인정’과 ‘안정성·유효성의 부정’의 두 가지 판단이 동시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둘 중에 하나의 판단만이 옳으며 또한 허용되는 것이다.(판단의 여지)
포섭에 있어서 하나의 올바른 판단에 대한 최종적 인식의 권한은 일반적으로 법원에게 주어지나, 법률요건에 불확정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는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 경험, 행정조직의 구성 등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행정청에게 마지막 인식의 권한이 부여된다는 것이 판단여지의 이론의 핵심이다.
행정청은 유일하게 적법하다고 판단되는 결정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어진 법률요건의 의미를 철저히 파악하여야 하나 한계적인 상황에서는 의심이 발생할 수 있다.
판단여지란 그 의심이 근거가 있고, 행정청에 의하여 내려진 결정이 타당하다면 법원이 행정청의 판단을 적법하다고 수인하는데 있다.
독일의 실무에서 판단여지가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들로
① 비대체적 결정,
② 합의제 행정기관의 구속적 가치평가,
③ 예측결정,
④ 행정정책적인 결정 등이 있다.
판단여지가 인정되어 사법심사가 제한되는 경우에 있어도 법원은
① 합의제 행정기관이 적법하게 구성되었는지 여부,
② 법에서 규정된 절차의 준수여부,
③ 일반적으로 인정된 평가기준이 준수되었는지 여부,
④ 사안과 무관한 고려 내지는 자의성 개입 여부에 대하여 심사를 하여야 하며,
이러한 한계를 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결정은 위법하게 된다(정하중, 행정법개론, 11판, 176면)
우리 판례는 지금까지 법률효과에 가능규정이 사용된 경우뿐만 아니라(대판 1994.10.11, 93누22678 ;2002.11.8.2001 두 1512)
대상판결과 같이 법률요건에 불확정개념이 사용된 경우에도 행정재량을 인정하고(대판 2000. 10. 27, 99누264 ; 2005. 7. 14, 2004두6181) 재량의 일탈·남용의 법리에 의하여 사법통제를 하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법이론적 관점에서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재량의 일탈·남용 법리는 법률효과의 선택과 관련하여 발전된 재량의 하자이론으로서, 법률요건의 포섭과 관련하여 적합한 통제기준이 될 수 없다.
법률요건에 포섭은 하나의 올바른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인식작용으로서, 여기서는 재량의 일탈·남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청의 판단이 판단여지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심사대상이 되는 것이다.
법률요건에 행정재량을 부인하고 아주 한계적인 상황에서만 판단여지를 인정하게 된 배경은 재량이 광범위하게 행사되어 행정권한이 남용되었던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독일에서 부분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판단여지설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지 않은 사법부가 지나치게 행정을 통제함으로써 행정이 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주된 논거로 하고 있으나,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그나마 위에서 언급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 판단여지를 기본권보호의 관점에서 더욱 제한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률효과뿐만 아니라 법률요건에도 재량을 인정하는 법리는 결과적으로 행정부에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게 되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도’를 발생시킨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판례는 대상판결과 같이 재량의 일탈과 남용을 개념적 구별 없이 함께 나열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관련 처분이 재량의 일탈에 해당하는지 남용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재량의 일탈, 남용 및 해태는 재량의 하자의 별개 유형으로서 향후 엄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정하중(서강대 로스쿨 명예교수)
학설
기속행위와 재량행위는 이상과 같은 실제적인 구별필요성에 따라 그 양자의 구별기준이 문제가 되며, 학설도
◆ 요건재량설
·◆효과재량설·
◆판단여지설 등으로 대립되어 있다.
첫째, 요건재량설은 재량을 일정한 행정행위에 대한 법률요건인 사실의 인정에 대한 판단(요건결정)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로서, 법률요건 인정의 결과 법률효과가 실현되는 것이지 법률효과 자체에까지 재량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률요건의 인정에 대해 행정관청의 판단의 여지가 있는 경우는 재량행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기속행위가 된다.
둘째, 효과재량설은 재량을 어떠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것인가의 선택으로 보는 결과, 기속행위와 재량행위의 구별은 법률효과의 발생에 대한 선택의 유무에 따른다고 본다.
따라서 재량행위인지의 여부는 행정행위의 성질 및 효과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서, 대체로 부담적 행정행위의 경우는 기속행위에 속하는 데 반해, 수익적 행위는 재량행위에 속한다고 본다.
셋째, 판단여지설은 불확정개념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불확정개념은 법개념이기 때문에 법률이 행정행위의 요건을 불확정개념으로 정할지라도 행정관청에 임의적 해석·판단의 여지는 없고, 불확정적이지만 경험칙에 입각한 해석에 의해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불확정개념의 일률적인 기속행위성을 배격하고, 불확정개념에 의해 행위의 요건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재량행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견해이다.
한계
법규가 행정관청에 재량권을 부여한 경우에도 그 재량권의 한계를 넘는 재량행위는 부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법이 된다. 이러한
재량권의 한계는
외적 한계와
내적 한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법이 행정관청에 재량권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 즉 외적 한계를 넘은 재량은 결국 무권한의 재량인 것이며, 위법한 행위가 된다. 재량권의 외적 한계를 넘는 행위를 가리켜 재량권의 유월 또는 일탈이라고 한다.
둘째, 법이 행정관청에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는 범위, 즉 재량권의 외적 한계 안에서도 재량권은 조리상의 원칙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재량권의 행사에 관한 조리상의 제약을 재량권의 내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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