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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산업의 살아남기 위한 메모(2)

LBA 효성공인 2016. 2. 29. 18:59
한국건설산업의 살아남기 위한 메모(2)

작성자 : 이순병 

        

         
       

건설산업의 조달방식


입찰을 해서 건설회사를 정하고 계약에 의해 시공하는 절차를 지금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이러한 시장경쟁 체제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옛날 왕들은 자기치적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큰 역사(役事)를 일으켰습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이 그런 범주일 겁니다. 노예나 백성들을 동원했겠지요. 일본은 도쿠가와 시대 에도(지금의 동경)를 건설하기 위해 목수들을 동원했습니다. 일본의 오래된 건설회사의 이름 중에는 그 당시 목수의 이름이 그대로 있는 것이 꽤 있습니다. 막부에서 일을 나눠 주었는데 요사이 말하는 특혜같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량을 골고루 나누어(공급) 인력동원을 분산(분배)시킨 것이라 짐작합니다.


한국은 1960년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힘있는 분들이 1)건설물량을 나눠주던 시대를 거쳐서, 2)나눠먹는 시대로, 그리고 지금은 3)각자 도생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나눠주고 나눠먹던 시대에는 계약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을이 갑에게 덤빈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었습니다.

지금 한국의 건설시장은 계약서대로 일하자는 의식전환이 매우 빠르게 진행중입니다. 이제 한국의 건설현장은 부실을 감출 수도, 못본체 할 수도 없는 투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대로 집행할 틀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해외현장에서 계속되는 부실경영의 문제도 그 근본적인 뿌리는 계약의 엄중함을 경시해온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건설산업은 대표적인 수주산업입니다. 같은 수주산업이라도 조선이나 항공기 제작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선행되지만, 건설산업은 선투자가 극히 적은 특성때문에 막말로 따는 놈이 임자인 때가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보고 골라서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내가 살 집을 누구에게 짓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더구나 정부차원으로 가면 이야기가 매우 복잡해 집니다. 건설산업의 실체는 노동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어떤 제도가 되었든 땅을 파고 집을 짓는 인부들은 옛날과 다를 바 없이 현장에서 일을 합니다.

문제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인 신하, 관료, 기업을 포함한 관리자의 역할입니다. 이들이 역할을 잘 해주어야 서민들이 잘 먹고 살고 나라 경제가 잘 굴러갑니다. 그래서 수많은 조달방식이 개발되었습니다.


단가계약, 즉 물량x단가 방식은 수급자(시공자)에게 가장 유리한 계약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이 제도를 쓰는데 이 제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매우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발주처가 아주 상세하게 물량내역서를 만들어서 입찰에 부치면 입찰자는 단가만 적어 넣으면 됩니다. 비록 물량이 도면과 다른 점이 발견되더라도 입찰단계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입찰단가도 발주처가 예산을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단가에서 많이 벗어나면 부적격판정을 받습니다.

종심제(종합심사낙찰제)는 또 하나의 운찰제입니다. 입찰내역서의 단가와 실제 현장의 단가가 다른 제도는 그렇게 폄하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사만 따면 큰 리스크없이 설계변경등을 통해서 적자를 만회할 수 있다는 오해와 오명을 뒤집어쓰지만 과거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익숙한 우리 건설경영자나 기술자들이 물량과 단가를 모두 시공자 책임으로 하는 국제입찰에서 경쟁력이 뒤지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계약문화를 시급히 국제수준으로 바꿔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종심제는 지난 정부시절 무리한 최저가제도 집행으로 완전히 망가진 건설시장의 부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도입한 제도로서, 원가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감합니다. 또 그렇게 요지부동이던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그런 제도를 시장에 도입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각자도생의 시장경쟁 속에서 누가 수주를 할지 모르는 상황은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나눠주기나 나눠먹기가 사라진 현재 한국의 건설시장에서 최대의 발주자이자 시장의 안정성을 경제의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정부가 건설시장을 무한경쟁으로 몰고가서는 안됩니다.

공종별, 규모별로 전문화시켜 유사한 역량을 가진 집단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경영에 안정성을 보장하는 시장의 틀을 빨리 만들어 주아야 합니다. 빨리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는 건설회사들이 자기들에게 익숙한 제도와 관행에 안주하려고 제도를 왜곡시키거나 희석시키려 하는 행태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정부가 나눠먹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기업들이 예측가능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그 산업이 지속된다는 매우 심각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수주, 매출, 이익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자금, 인력, 시장개척, 기술개발등 정상적인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공사만 따면 그 공사는 적자를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경영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회사는 그렇습니다.

이런 개념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종심제에 다 포함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다투는 문제입니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정부가 과감하게 방안을 마련해서 소신껏 시행해야 합니다. 법은 가진 자들을 위한것이 아니라 공생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건설산업의 제도와 시장


계약의 무서움을 모르는 과거의 관행에 젖은 건설회사들은 우선 공사를 따고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경영을 합니다. 발주처의 계약담당자들은 네가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 당사자들의 행태는 매우 위험한 시장파괴적 생각과 잘못된 충성심의 발로에서 나옵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재정은 크게 바꾸기 힘들 것이고 이미 선진국수준의 눈높이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바램을 피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정보가 공개된 한국에서 더 이상 국민에게 감추거나 속이기는 불가능합니다. 현장의 안전, 품질, 환경관리의 수준도 선진국만큼 높였습니다.

지금부터는 현장에 보건전담자도 두어야 합니다. 건설회사의 년간 사망사고 누계가 3인이상이면 대표이사는 고용노동부 장관을 면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망사고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절차는 면담일정과 별도로 진행됩니다. 대부분 건설현장에는 미숙련의 고령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서 원가는 차치하더라도 안전과 보건관리에 매우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한 공사비에 사람구하기도 어려운 현실은 뒤로 미루고 건설회사 대표 불러다 망신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의 각 부처가 각자의 담당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건설현장에 필요한 기준을 법제화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수주가 급한 건설회사들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 바로 정부가 위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서 수주영업에 불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이것을 전가의 보도로 쓰곤합니다. 그런 제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지, 그리고 그런 제도를 도입하면 우리 건설회사들이 국제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지 등을 총괄적으로 관장하는 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제도를 만들 때 시장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가 법제화되어있고, 또 요즈음 공무원들은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제도를 만드는 공무원들은 산업측 이야기를 너무 반영하면 의심을 받는다는 피해의식도 있을것입니다. 선진국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돌아온 교수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 의견들을 시장에 도입할 때에는 신중히 그리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약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거창하고 요란하게 전개됩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각 산업별로 선진화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위원장들은 모두 민간인으로 하고 공무원들이 간사를 맡아 위원장을 돕는 형태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건설산업선진화위원회 공공사업효율화분과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었지만, 결과는 태산명동에 서일필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와 기법이 선진국에서 쓰이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 시장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행 계약관련 법규가 시장과 괴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기존의 법규를 뛰어넘는 새로운 틀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이중삼중의 행정업무만 가중될 것입니다 


3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