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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보호무역

LBA 효성공인 2016. 7. 4. 15:26

브렉시트와 보호무역

                      

                                                                 

브렉시트와 보호무역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운용방식은 18세기경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초체력을 단단히 갖춘 영국은 국제경제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한 터였다.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절대강자였다. 강자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긴다. 언제든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유롭다. 거칠 것 없으니 자유롭다. 여유와 자유는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미덕이다.

 

영국의 이런 자신감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는 <국부론>(1776)에서 시장에 대한 자유방임을 주장하였다. 그것을 국제경제에도 적용하였는데, 바로 자유무역사상(free trade)이 그것이다. 국민적 경계를 지우고 모든 나라는 문호를 개방하자. 세계는 하나다. 세계화(globalization)!

 

비록 25십여년 전 구닥다리 고전의 얘기지만, 이 생각은 주류경제학의 국제경제론의 출발점이며, 알파와 오메가다! 이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사상이며, 세계무역기구(WTO)의 정신이며, 유럽연합(EU)의 출발점이다. 스미스의 사상을 따라 현재 유럽의 28개국이 국경을 허물고 역내에서 자유무역을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의 생각에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한 것은 아니다. 당시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Georg Friedrich List)보호무역을 주장하였다. 독일과 같은 후진국에서는 자유무역보다 보호부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회가 닿으면 그의 이론이 갖는 경제학적 의미에 대해 다시 상술되겠지만 오늘은 자주 간과하는 보호무역이론의 정치적측면에 주목해보자.

 

스미스는 자유무역을 주장하기 위해 국가의 문호를 개방하자고 말한다. 이 말 뒤에는 국민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류경제학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국민국가는 무역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며,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다. 이런 생각을 극단적으로 피력하는 사람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그는 사회복지와 노동자에 가장 적대적인 현대 신자유주의자들의 아버지다.

 

리스트는 국민국가’(nation-state)의 존재를 처음으로 강조한 경제학자다. 스미스의 뒤를 이은 고전파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장소,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이고 타당한 경제학에 대해 그는 각국의 역사적 사정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서로 다른 국민적 경제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41년 그의 수작 <정치경제의 국민적 체제>(Das nationale System der politischen Ökonomie)는 그의 사상을 잘 보여준다.

 

국민국가가 왜 필요한가? 리스트는 경제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을 따랐다. 그들은 경제를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리스트에 따르면 모든 나라는 원시적 농업의 제1단계, 개량된 농업과 상업의 증가 및 공업의 발흥이라는 제2단계, 공업이 발달한 제3단계로 나누어지는 경제발전단계를 거친다. 무역에 참가하자면 비슷한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데, 1단계와 2단계의 나라는 3단계 나라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따라서 국민국가는 바로 이런 유치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은 어리고 약한 산업이다. 그러니 역사학파 경제학에서 국민국가는 어리고 약자 자들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국민국가의 기본정신은 그 후 여러분야로 확장되어 적용되었는데, ‘사회복지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다. 1880년대 독일에서 비스마르크에 의해 사회복지정책이 가장 빨리 도입되었고,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역사학파경제학의 국민국가 중시 전통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의 정책에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지만, “근로자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바꾸어 말하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존재이유로 하는 국가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면서 국가 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치안상태의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보장정책을 도입하였다는 비스마르크의 회고담을 포장된 미사여구로 박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독일은 보호무역정책에 힘입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고, 그 정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앞장서 돌보아주었다. 국민은 건강하였고, 국민은 행복하였다. 모두 국민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은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국민국가의 지리적 장벽을 지웠다. 비자나 여권 없이 이 지역 내에서 모두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국민적 경계가 없다, 상품도 서비스도 자유롭게 거래된다. 관세와 비관세장벽이 없기 떼문이다. 거래시 복잡한 환전절차도 필요 없다. 국민통화(national currency) 대신 공통의 화폐, 유로(Euro)로 뭐든지 살 수 있다. 경제통합은 그 긴밀성에 따라 자유무역지대, 관세동맹, 경제동맹, 전면적 경제통합 등 다섯 단계로 발전된다. 유럽연합은 거의 마지막 통합단계에 해당된다. 국민국가를 거의 반납한 상태라는 것이다.

 

국민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혹자는 국가를 지배자들이 국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나 자본가들의 위원회로 본다. 마르크스가 그랬고, 내가 자주 언급하며 따르는 베블런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자본가만의 국가가 아니다. ‘모든 국민의 국가다. 특히 압제받는 자들이 도움을 구할 마지막 공적 제도는 국민국가다. 국민국가를 잃은 민족은 숱한 멸시와 착취에 노출되었다. 그래서 약하고 어린 자들은 더욱 국민국가를 원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렇다. 일제 강점 하 일본제국주의와 싸운 사람들 중 강자들은 드물다.

 

나는 브렉시트(Brexit), 곧 영국의 EU 탈퇴를 진보와 보수, 젊은 세대와 노년층의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격렬한 세계화, 곧 하이에크형 신자유주의에서 삶을 위협 받는 어리고 약한 자들의 분노요, 국민국가에 대한 요구다. 그들은 국민국가 없이 생존할 수 없다. 브렉시트의 영국민들이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뉴욕시민의 분노와 요구는 다르지 않다.

 

나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피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사회과학에서 법칙을 거부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세계화는 거의 법칙에 가깝다. 그걸 거꾸로 돌리기는 어렵다. , 거꾸로 돌린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계화를 현실로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잃어가는 국민국가를 되찾아야한다. 그와 함께 국민국가의 존재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그것은 약하고 어린 사람들을 위해 존재했다.

 

세계화를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유치한 자들을 보호하는 국민국가의 역할은 포기될 수 없다. 이런 핵심적 기능을 복원하는 세계화가 얼마나 가능한 지 고민해야 하며, 그 가능성을 책임 있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영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브렉시트가 이 땅에 주는 값진 교훈이자 강한 메시지다.

 

세계화를 밀어붙이면서 국민국가의 와해를 시도하는 신고전학파경제학,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도, 세계화를 수용하며 국민국가를 부정하는 마르크스경제학도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경제학, 제도경제학(institutionalism)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